국어평생교육 ＊ 우리말 배움터

황제음부경(黃帝音符經)에 `사람은 만물(萬物)의 도적이라` 하였다.
열국시대에 제(劑)나라에는 성을 국시(國氏)칭하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으며 같은 시대에 송(宋)나라에는 향씨(向氏)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향씨는 삼장막대(三丈)를 휘둘러봐야 걸릴 것이 없는 가난뱅이였다.
향씨는 제나라에 있는 국씨가 큰 부자라는 소문을 듣고, 그 부자되는 방법을 배우고자 불원천리하고 며칠간을 걸려 제나라땅 국씨를 찾아갔다.
향씨는 주인 국씨에게 인사를 마친 뒤 단정히 앉아 공손히 물었다.
"듣자오니 선생께서는 제나라에서 가장 큰 부자라 하온데 그 부자되는 비결을 가르쳐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국씨는 엄숙한 표정으로 정중히 대답한다.
"부자가 되는 비결은 별다른 게 아닙니다. 저는 만물을 도적질을 잘 하였을 뿐이지요, 처음 1년쯤 해본즉 그럭저럭 먹고 살 만큼 되었지요. 2년째는 약간 여우가 생깁데다그려. 그러던 중 3년간을 계속해보니 아주 풍적하게 되더군요. 그 뒤 저는 이사람 저사람에게 일러주기를 `만물을 잘 도적하여 가지라.`하였지요. 그랬더니 근처 고을 사람들은 다 이 방법을 썼기 때문에 모두 잘 살게 되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게 쉬운 방법도 몰랐다니····."
향씨는 국씨의 이야기(부자되는 비결)를 듣고 대단히 기뻐하였다. 향씨는 국씨가 `만물을 도적질하라`는 참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다만 진짜로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남의 물건을 훔치라`는 것으로 잘못 알았다.
자기 나라(송)로 돌아온 향씨는 그 다음날부터 남의 집 담을 뛰어넘고 비밀리에 들어가서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훔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짓이 얼마나 가랴. 그는 도둑으로 붙잡혀 훔친 물건을 비롯해서 그나마 남은 재산까지 몰수당하고 말았다.
향씨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국씨가 자기를 골탕 먹이려고 고의적으로 몹쓸 짓을 가르쳐 주어서 패가망신하세 되었다고 분해하였다.
향씨는 다시 제나라로 가서 국씨를 만나 원망하였다. 국씨는 향씨에게 그동안 도둑질하다가 잡혀 재산을 몰수당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허, 당신의 도둑질하는 방법이 틀렸소이다. 내가 전날 당신에게 `만물을 도둑질하라`고 하였지요. 그 말은 `천지간에 흩어져 있는 만물을 도둑질하라.`한 것이지 누가 당신에게 남의 물건을 몰래 훔쳐오라는 말이었던가요. 하늘에는 사시절의 변화하는 자연의 이로움이 있고 땅에는 만물이 생성하는 이로움이 있다고 들었소이다. 나는 천지간의 시리(時利)를 취한 셈이지요. 즉, 물(水)에서는 물의 이익을 취하고, 흙(地)에서는 생산과 양육의 힘을 훔쳐 곡식을 심어 가꾸고 초목을 번식시켜서, 그것으로 식량도 하고 옷감도 만들며 또는 집도 짓고 담도 쌓고 삽니다. 공자 말씀에도 하늘의 도를 쓰고 땅의 이로움을 취하라 (用天之道, 因地之利) 하셨으니 하늘의 도를 쓴다 함은 하늘의 사시(四時:春夏秋冬)을 따라 봄에는 씨 뿌리고 여름에는 거름주어 가꾸며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는 그것을 잘 저장하는 일이며, 땅의 이로움을 취한다 함은 하늘의 도에 따라 그러한 모든 일을 땅위에서 행하는 것이며, 또는 산에서는 짐승들을 잡아 그 고기와 가죽과 털을 훔쳐 적절하게 사용하고 물(水)에서는 물고기며 자라(?)들을 훔쳤으니, 이 모두 천지간에 있는 자연 속에서 훔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그러므로 쌀, 보리, 콩, 채소 등 농작물이나 산짐승, 들짐승, 물고기 등이 모두 자연 속에 있는 임자 없는 자산이외다, 애당초 `내것이다`라고 지정된 물(水)이란 단 하나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는 그러한 임자 없는 모든 재산은 자연 속에서 도둑질하였기에 아무런 탈도 없었습니다. 한편 금은보화나 곡식, 비단 같은 물자는 사람마다 각기 자기의 노력으로 모은 것이므로 그러한 것들은 개인의 소유물입니다. 그래서 남이 함부로 훔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그러한 임자 있는 것들만 노력 없이 훔쳤기 때문에 화를 당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하겠소."
국씨의 기나긴 설명을 듣고 난 향씨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다가 `일깨워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도 돌아갔다.

( 徐京保, ≪古語, 格言과 傳設, 風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