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평생교육 ＊ 우리말 배움터

머리를 하늘로 두었다는 것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흔히 어린이를 데리고 놀릴적에 세상달공을 하면서,
‘뒷간 하랑범이 뒷간 길을 쓸다가 귀떨어진 돈 한푼을 얻어서 서울가서 밤 한 말을 사가지고 오다가 한강 물에 퐁당 빠뜨렸구나...’
로 시작된 긴 사설 가운데 벽장 속에 넣어 둔 밤을,
‘머리 감은 새앙쥐가 들락날락 다 까먹고 비레먹이 한톨이 남았구나!’
의 ‘머리 감을 새앙쥐’도 사람을 말하는 소리다. 다른 동물과 달라, 머리를 하늘로 두고 머리털이 까만 것이 인간이언만, 사람의 은공을 모르기도 아마 다시 없을 것이다. 개는 밥 한끼니 준 공을 3년을 잊지 않는다는데, 그런 면에서 축생만도 못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예컨대 어떤 사람이 장마철에 떠 내려가는 재목이라도 건질까 하고 강가에 나갔다가 어린애 우는 소리가 나기에 보니 조그만 아이가 나무토막에 매달려 떠내려 온다. 가엾은 생각에 얼른 끌어 당겨 보니, 나무토막에는 보기에도 징그러운 무섭게 큰 구렁이가 칭칭 감겨 있다.
나무토막 채 육지까지 끌어내어 어린 것을 때에 안고 돌아오며 보니, 구렁이도 살아 난 것이 무척 좋은 듯이, 스르르 풀고 산을 향하여 사라져 간다.
마침 두 내외 사십이나 되도록 하기 하나 낳아 보지도 못했던 터라, 그 아이를 기출이나 다름 없이 금지옥엽으로 여겨 곱게곱게 키워 냈다.
일곱 살 먹어서부터는 글방을 보내 제법 글줄도 알게 되고, 나이 이십이 가까워 와,이제는 장가들일 걱정을 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평화로운 그 가정에 예기치 않았던 풍파가 일었다.
포도청 군관들이 찾아 와 주인 있느냐기에 영감이 나가 만났더니 잡담 제하고 고랑을 채워 풍우같이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대장 앞에 끌리어 문초를 받는데, 죄목이라는 게 이 또한 엉뚱하고 모를 얘기라, 내내 잡아 뗄 수밖에 없다.
그랬더니 네놈이 증인이 있는데 그러느냐고 매질을 시키는데 보니, 아들놈의 친구로 늘 집에 오는 놈이요, 아들놈도 저만침 대기하고 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돈 쓰는 게 좀 헤프기에 나무랜 일밖에 없는데, 이놈들이 이것을 앙심 먹고, 날 죽을 구렁에 몰아넣어 재산을 탐낼 줄이야.)
영감은 그만 천지가 깜깜하여 이쯤 된 세상에 제자식하고 싸우게 되었다.
(차라리 어서 시원하게 죽여나 다구.)
과연 잘못했습니다고 복죄하고 말았다.
모진 매 끝에 오긍로 끌려 내려가 갇혀서 생각해 보니 한심한 일이다. 그런데 밤중이나 되어 곁이 선뜻하기에 보니 구렁이다. 그때 그 구렁이다.
(아앗)
허벅다리를 덥썩 물었다 놓고는 스르르 창살 사이로 나가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원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이놈마저 일부러 찾아 와 이러다니)
그러는데 물린 자리에서부터 붓기 시작한 것이 전신이 북통같이 부어, 팔다리를 굽고 펴지도 못하겠고 얼굴마저 눈을 뜰 수 없을 만치 무섭게 부어 올랐다.
(이젠 속절없이 죽었구나!)
그러고 있으려니 또 옆구리가 선뜻한다. 보니까 역시 그놈의 구렁이다. 욕할 근력도 저주할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풀을 한아름 뜯어다 앞에다 놓고는, 무언가 무척 말하고 싶은 눈초리로 자꾸만 쳐다 보며, 천천히 그 자리를 떠난다.
(이상도 하다)
영감은 야릇하게도 마음에 끌리어 그 풀을 집어서 구렁이에게 물린 자리를 문질러 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신기한 일이 있나? 부은 것이 차츰 내린다.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 풀잎을 이겨서는 상처에 처매고, 얼마 만에 떼고선 다시 새 놈을 붙이고, 이렇게 밤새 했더니, 이튿날 새벽엔 언제 그랬던가 싶게 깨끗이 나았다. 약풀은 아직도 많이가 아니라 거의 그대로 남았다.
그런데 바깥이 쑬렁쑬렁한다. 원님이 간밤에 뭐에게 물려 전신이 북통같이 부었는데, 의원을 불러대도 약을 아는 이가 없다는 거다. 점심 때가 되었다. 원님은 아침보다도 더해서 갑절이나 되게 부었다고 야단들이다.
“누구고 이 병만 고쳐 주면, 어떤 소원이라도 하가지만은 들어 주겠다.”
이런 포고가 나돌았다.
영감은 그제사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 쓰다 남은 약풀을 챙겼다.
사형이 확정되어 시간만 기다리는 죄인이라도, 원님 병을 고치겠다는데 마다 할 리가 있나? 잠시후 그는 원님 곁에 앉아 약풀을 이겼다. 상처에다 붙이고, 다시 새 약이 되면 갈아 붙이고...얼마 만에 원은 사람을 알아 보았다.
“네가 엊그제 그 죄수가 아니냐?”
“예, 그러하옵니다”
둘이는 밤새 도란도란 다정하게 지난 일을 얘기하고 치료 받았다. 물론 아침이 되기 전에 거뜬하게 나았다.
다시 좌기를 차린 원은 영감의 아드로가 친구놈을 잡아들여 엄한 버를 내리고, 영감은 누명을 벗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기에 너무 분복에 없는 자식을 바라지 말라는 얘기인지도 모른다.

(李勳種,≪韓國의 傳說, 笑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