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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른 이 175198860 명
깁고 더함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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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글 사랑 놓지 못하는 이오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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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일할 때 하는 말 놔두고 배운 분들은 왜 한자말 쓰는지" 아동문학가 이오덕(78) 선생은 우리말글살이 운동에 평생을 바쳐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그의 실천은 머리띠 묶고 거리의 군중을 향해 목청을 돋우는 광장의 실천이라기보다는 만년필과 원고지를 무기로 삼아 7천만 언중을 향해 말글살이의 바른 길을 알리는 골방의 실천이었다.
이 선생은 4년 전 경기도 과천에서 충북의 한적한 농촌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아들과 손자, 그리고 아장아장 걷는 증손자까지 4대가 함께 자연의 품속에서 생활하는 것은 어찌보면 행복한 후년일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지병을 양약으로 다스리다 얻은 부작용으로 그는 지난 겨울 ‘이제 목숨을 놓아야 하는가’ 싶은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몸이 쇠약해진 상황에서도 그는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신록이 더욱 짙어지면서 기운을 조금씩 회복해가는 이 선생을 충주시 신니면 수월리의 거처에서 만났다. 집필실 겸침실로 쓰는 방은 빼곡이 들어찬 책으로 고서향이 가득했다. 그가 좋아한다는 서양화가 밀레·고흐·고갱의 그림이 낡은 책들과 낯선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장사판 물든 아동출판계 서양책이 뒤덮어 입시 찌든 아이 자살해도 이젠 예사로 알아 목숨놓나 싶었는데 대체 의학 덕에 나아져 건강이 몹시 나빠지셨다는 말을 듣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상태가 좀 나아져 흰죽을 조금씩 먹고 있습니다. 7~8년 전부터 신장염을앓았어요. 병원에 입원도 하고 수혈을 하기도 했는데, 의사 처방대로 몇 해 동안 약을 받아먹었다가 위장이 나빠지니까 위장약까지 아홉 가지를 먹었어요. 그런데6~7개월 전부터 약을 먹으면 다 토해내는 거예요. 음식 맛이 없어지더니 4~5개월 전부터는 아예 죽도 먹지를 못했어요. 그러다가 서울에 대체의학을 하는 분이 있어서 거기 한 주에 두 번씩 올라가 치료받고 도움받고 하면서 몸이 나아지고 있어요. 한동안은 ‘수명이 다했나 보다’, ‘그만 떠나는 게 좋겠다’ 그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세상 인연 다 끊어버리면 해방이 되잖아요. 그런데 마음 한 켠에서‘나만이 할 일이 남았는데’, ‘세상에 정말 보탬이 되는 일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런 욕심을 버리지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아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하실 일이란 게 우리말, 우리글을 바로 쓰도록 이끄는 일이실 텐데….
=신문이나 잡지에 나온 글, 방송에서 쓰는 말을 보면 참 답답하고 서글픕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됐나 하는 참담한 생각이 들어요. 일제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 겨레말이 다 망가졌어요. 일제 때부터 일본 글을 읽고 번역하고 그러면서 배운 글과 말이 우리 글과 말을 온통 뒤덮어 버렸습니다. 우리 말글을 제대로 살려써야 하는데, 부모들부터 잘못된 말글을 배우고 자랐으니 아이들이 제대로 배울 수가 없습니다. 배운 사람들이 일본 글을 자꾸 읽다 보니까 머리 속에 한자말만 떠오르고, 그걸 또 뒷세대가 배우고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전혀’라는말을 참 많이 쓰는데, 그걸 ‘아주’ ‘도무지’ ‘조금도’ 이렇게 써도 되는데, 그 일본말 번역어가 몸에 배어서 그 말만 쓰는 거예요. 먼저 말이 있고 그 다음에 글이 있는 것인데, 보통 사람들이 밥먹고 일하고 잠자고 하면서 쓰는 말을 살려 글로 써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그게 거꾸로 돼서 지금은 아이들조차 책에서나 나오는 말, 우리 말이 아닌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 동안 아동문학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으셨는데, 늘어나고 있는 아동출판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전에 동화도 쓰고 동시도 쓰고 아동문학이론 비슷한 글도 쓰고 했는데, 제대로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말을 살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우리 겨레의 정신을 바로잡고 얼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소설가고 시인이고 학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고칠 생각을 안 하니, 아이들에게라도 우리말을 제대로 이어주겠다고 생각해서 아동문학에 관심을 기울였지요.
하지만 요즘 아동문학이나 아동출판을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아이들의 정신이나 인간성을 올바르게 기르려는 좋은 작품을 쓰기보다는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또 아이들 공부시키려는 부모들의 욕심에 맞는 책만 많아지고 있어요. 우리 민족을 살려야겠다는 게 아니고 돈이 되니까 동화작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동출판계가 아이들 상대로 책팔아먹는 장사판이 되고 말았어요.
또 하나 큰 문제가 있는데 외국 아동문학 시장입니다. 우리나라 작품의 질이 떨어지니까 외국문학 질이 높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동 문학 판이 외국 문학번역 시장이 돼버렸습니다. 완전히 식민지 문학입니다. 아무리 좋은 외국 작품도 그것만 아이들에게 줄 때는 우리것은 모조리 형편없고 서양 것만 좋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됩니다. 그런 책을 보면 서양 사람 서양 생활이 나오고 그걸 그대로 따라 배우고 서양 문화를 동경하게 됩니다.
아동문학이 민족의 말과 글, 얼과 정신을 전달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데 그것마저 서양 사람 되게 하는 것으로 다 찬겁니다.
학교교육의 문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요. 절망이지요. 교육이 경제 논리에 치우쳐서 아이들을 경제동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서로 사정없이 싸우고 경쟁하고 적이 돼서 그 중 가장 센 놈, 독한 놈 세워서 엘리트라고 만들어 내는 일, 그걸 교육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아이가 자살해 죽었는데, 아유 참, 분노가 일어나고 절망감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도 예사로 압니다. 학교교육이고 가정교육이고 도무지 살인교육, 출세교육뿐입니다. 아동문학이 학교교육의 해를 풀어주는 것이 돼야 하는데 아동문학도 부모들의 미치광이 같은 교육열에 휩쓸려가고 있어요.
우리것, 우리 민족을 강조하시다 보니 한쪽에선 선생님을 보수주의자로 보기도 합니다.
=글쎄요. 나는 진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민족이라는 것에 매여 있다고 한다면 그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외세가 지배하고 있고 남북이 갈려 있는데 아직은 민족에 집착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민족 살리고 나서야 세계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나는 민족에 얽매이는 사람은 아닙니다.
보세요, 여기 걸린 그림들.
나는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나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을볼 때마다 이들이 서양사람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그린 그림과 비교해 보면 더 동족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나라 어떤 화가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을 제대로그린 적 있습니까 나는 전통이라 해도 잘못된 것이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은 우리 민족의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할 때라는 것이지요.
건강이 안 좋으신 중에도 여러 권 분량의 원고를 쓰셨다는 이야기를들었습니다.
=지난해 열린 월드컵을 보면서 응원 현상 중심으로 우리 교육 문제를 다룬 글을 써두었습니다. 내가 젊은 사람들 비판도 많이 했지만, 그 기가 막힌 교육을 받아왔는데도 그렇게 싱싱한 모습 보면서 희망을 느꼈습니다. 또 아동문학에 관한 이론을 두 권 분량으로 썼습니다. 일제 식민지와 분단을 거치면서 우리 아동문학이 어떻게 식민지문학, 반공문학, 분단문학이 됐는지, 또 신판 식민지 문학이 됐는지정리하는 글입니다. 시사문제 중심으로 쓴 원고도 한 권 분량이 되고요. 몸이 이렇게 말이 아니니 제대로 손질을 못하고 있습니다. 건강이 나아지면 내가 살아온 이야기,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2003/05/26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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