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전야,거실 창너머로 흰눈이 내려 소복히 쌓이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그때 심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한순간 말할 수 없는 비감함과 서운함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아,결국 그분이…” 하는 탄식이 폐부 깊숙이 메아리쳐 갔습니다.
그러나 슬픔의 절실함과는 별도로 전화를 끊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내 귓가에는 선생님이 남기신 시의 한 구절이 계속 맴돌고 있었습니다.“괜찬타,……/괜찬타,……/괜찬타,……/괜찬타,……”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어서였을까요.6·25전쟁의 비극과 간난고초 속에서 선생님이 거두신 절창 중의 하나인 ‘내리는 눈발 속에서’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살이의 힘듦과 고달픔이야 어느 시댄들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만 전쟁이란 그 처참한 살육의 현장을 정신착란의 증세까지 더불고서 통과해온 시절에 이러한 도저한 달관의 경지를 절절하고 빛나는 언어로 직조해낼 수 있었던 선생님을 생각하니 새삼 숙연해지는 마음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선생님을 잃은 슬픔을 선생님이 남기신 시로 위로받는 이 역설적인 정황이라니!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지난 세기 동안 한국인의 심성을 형성해온 가장 중요한 질료 중의 하나가 사실 선생님의 시 아니었습니까.적어도 글줄이나 읽어본 사람이라면 선생님의 시에 나오는 이런저런 구절을 상기하지 않고 어떻게 자신의 기쁨이나 슬픔,노여움과 초연함을 말의 형태로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한국어가 근대라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노출된 지 이제 백여년.그 세월 동안 만일 선생님의 시가 없었다면 한국어는 얼마나 가난하고 적막한 신세를 감수해야 했을까요.참으로 선생님은 ‘부족방언의 마술사’요 ‘우리 시의 지존’이었습니다.
우리 시에 진정 ‘야수파’의 등장이라 부를 수 있는 전무후무한 감수성의 변혁을 몰고온 처녀시집 ‘화사집’의 들끓는 언어를 기억합니다.한국어가 얼마나 그 나름의 아름다움과 깊이로 충만할 수 있는지 증명해준 ‘귀촉도’와 ‘서정주시선’의 섬세하고 유려한 표현들을 기억합니다.육신의 영생과 정신의 부활을 꿈꾸던 장년기의 선생님이 도달한 ‘신라초’와 ‘동천’이란 아스라한 세계의 매혹을 기억합니다.그리고 ‘질마재 신화’와 숱한 기행시에서 보여준 걸직하고 풍요로우면서 유머러스하기도 한 언어의 카니발을 기억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선생님에겐 재능과 노력의 자연스러운 발현이었겠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다시없는 은총이요 선물이었습니다.영국시인 W H 오든이 선배 시인 예이츠에 대한 추모시에서 말한 대로 선생님은 “시를 경작함으로써/저주를 포도원으로 만들”었고 “마음의 사막에/낙수샘이 솟아나게” 했습니다.선생님의 언어의 촉수가 가닿는 자리마다 잊을 수 없는 모습들이 기막힌 표현의 옷을 입고 떠올랐습니다.
사모님이 돌아가신 후 선생님의 처지와 계획에 관한 소식을 주고받으며 많은 문인들이 쓸쓸해했습니다.심지어 이땅을 떠나 멀리 이국타향에서 만년을 보내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까닭없이 우울해하기도 했습니다.곡기를 끊고 병석에 누워계신지 두달째,결국 선생님은 모든 집착과 번뇌를 놓아버리고 영생의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모든 오욕와 오해는 지상의 것으로 남기고 오로지 당신이 남긴 시의 영광과 함께 천상에서 평안하소서.한국어의 생명이 지속하는 한 선생님의 시는 영원할 것입니다.
/남진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