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을 사용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이를 홍보해야 하는 게 어색합니다. 지금까지는 새말 만들기나 외래어 다듬는 일에 몰두했으나, 그동안 너무 많이 만들어 `소화불량`에 걸릴 지경입니다. 앞으로는 속도와 양을 조절하고, 만들어놓은 말들을 왜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국립국어연구원 어문실태연구부에 근무하는 전수태(田秀泰.56) 학예연구관은 평생을 국어와 더불어 살아온 `우리말지킴이`이다. 그동안 펴낸 저서만 `국어 이동동사의 의미 연구`(박사학위논문) `반의어사전` `북한 신문-방송용어 조사연구` 등 9권이나 된다. 발표한 논문과 연구 보고서는 줄잡아 50편이 넘는다. 150여 차례나 신문-방송에 기고하고 출연도 했다. 국어학 분야에서는 유명인사인 셈이다.
전 박사가 국어학 연구에 입문하기 전에는 평범한 국어과 교사였다. 공주사대를 졸업하고 경북 의성고, 순창 금과중, 전북사대부고, 전주중앙여고 등에서 10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그 새 전북대와 고려대에서 국어교육학과 국어학 석-박사 학위를 받는 억척도 부렸다.
"고교 3학년 때 담임이 인간적인 국어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빼고는 특별한 동기는 없습니다. 공부를 별로 안 했는데도 국어 성적만은 항상 잘 나와 자연스럽게 국어를 전공하게 됐습니다."
전 박사의 언어에 대한 감각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후천적으로 다져진 편이다. 굳이 비결을 찾자면 편지쓰기 정도라고나 할까. "중-고교 때 펜팔을 많이 했다"는 전 연구관은 "글을 좀 쓰니까 연애편지 대필해 빵을 얻어 먹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한다. 부인 한명림씨와의 결혼도 연애편지의 결실이라고. 열두 통만에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전 박사가 요즘 관심 갖는 분야는 산스크리트어와 남북한의 언어통일 문제. 산스크리트어를 연구하는 것은 독특한 그 문법기술 방법을 터득해 한국어에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북한언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통일을 지향하는 분단국 국민으로서, 특히 언어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세계의 미래학자들은 21세기에 일어날 10대 사건 중 1위로 지구상의 언어 90%가 소멸될 것을 경고했다"는 전 박사는 "입말은 이미 사라졌지만 글말은 영원히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산스크리트 문법을 연구해 한국어의 영생을 도모하려 한다"며 야심 찬 계획을 펼쳐보였다.
산스크리트어는 기원전 5세기경 인도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언어이지만, 지금은 사어(死語)가 됐다. 1786년 영국 학자 윌리엄 존스가 발굴한 세계 최초이자 가장 잘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산스크리트 문법서 덕분에 문자는 현재 완벽하게 재현이 가능하다. 그 문법책을 영어 독어 불어 일어에 이어 세계 다섯번째로 지난해 전 박사가 한국어로 번역했다.
전 박사는 남북의 언어통일 문제에 대해선 비교적 낙관적이다. "어문규범 차이 때문에 표기가 다른 어휘들이 일부 있지만, 전체적으로 의사소통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전 박사는 "5000년 동안 같은 언어를 사용해 온 민족인데, 그까짓 50여년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언어 이질화 운운은 과장됐다는 지적이다.
"남북 간의 대화보다 사투리로 인한 영-호남 사람 간의 대화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남북은 TV의 교양-드라마 프로그램과 정부 간행물을 교환하고 자주 왕래하다 보면 의사소통도 자연스럽게 될 것입니다. 일부 다른 표현이나 생소한 단어는 우리말 어휘가 그만큼 늘어난 것으로 해석하면 어떨까요?"
1996년과 2001년 중국에서 열린 남북한 언론학자 모임에 전 박사는 북한어 연구팀장 자격으로 모두 참석했다. 첫 번째 만남은 언어규범 통일 문제를 회의 안건으로 가져가 이견만 노출했다. 그러나 국어순화(말 다듬기) 문제를 의제로 내건 두 번째 만남에서는 어느 정도 신뢰가 구축됐다. 연말쯤 세 번째 접촉을 가질 예정이다. 지금은 북한 사전에 없는 `미등제어` 관련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남북 언어통일 작업에 당사자로 참가하고 있는데 책임감도 크지만 영광스럽고 보람도 큽니다. 단지 우리말만 연구했는데도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게 행운이지요. 소명감을 갖지 않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