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각’(길모퉁이) ‘가공선’(공중전선) ‘가병’(꾀병) ‘가설인’(가공인, 내세운 사람) ….
법제처가 만든 〈법령용어 순화정비편람〉에서 맨처음 나오는 필수 정비대상 용어들이다. 문맥 속에 들어 있다 해도 전문가조차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이 우리의 법령에 얼마나 산재해 있는가 보여주는 사례다.
9일 한글날을 맞아 법령 한글화 작업에 대한 공로로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로부터 ‘우리말지킴이’로 위촉된 법제처의 김태응(39) 법제기획관실 서기관은 “법령 한글화 작업은 사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셈”이라고 말했다. 김 서기관은 법제처가 2000년부터 추진하는 법령용어 순화 및 한글화 작업을 실무를 맡으며 ‘법률한글화특별조치법’을 입안해 지난 8월29일 국회에 제출한 공로 등으로 이번에 우리말지킴이로 임명됐다.
법제처는 2000년부터 새로 제정되거나 전문 개정되는 법령을 대상으로 만연체나 일본식 한자, 해독하기 힘든 전문용어를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법률 한글화 사업을 추진해오다 이번에 아예 ‘법률한글화특별조치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1046개 기존법 가운데 803개의 법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 서기관은 “새로 제정되거나 전문 개정되는 법령을 대상으로만 한글화 작업을 하다보니 1년에 30~40건밖에 대상이 안 됐다”고 한글화특별법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한글화특별법은 한자로 된 용어를 일단 한글로 표기하거나 병기하는 것이어서 알기 쉬운 한글로 풀어쓰는 작업은 아직 첫걸음도 내딛지 못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한글화특별법의 운명은 아직 불투명하다. 박원홍 한나라당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한자교육을 말살하려는 불순한 음모’라며 이 법의 통과를 막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김 서기관은 “여론조사 결과 87%가 법령용어 순화와 한글화 작업에 찬성했다”며 “한글날을 맞아 이 법이 통과됐으면 참 모양이 좋았을텐데 연말이나 내년 2월까지 기다려야겠다”고 아쉬워했다.
“처음에 시작할 적에는 다른 부처에서뿐만 아니라 법제처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해 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법제처의 꾸준한 홍보와 업무협조 덕분에 새로 제정되거나 전문 개정되는 법령은 한글 표기는 물론이고 쉬운 용어로 바뀌고 있습니다.” 김 서기관은 “한글화는 한자교육과는 또다른 문제”라며 “이제 한글화는 누가 뭐라고 해도 국민의 절대다수 속에 진행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