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를 두고 행간의 침묵이 없어 재미없다고도 한다.
평이한 산문으로 서술된 지극히 명료한 이야기.
그러나 내가 의도한 것은 시를 다 읽고 난 뒤에 오는 무한깊이의 침묵이다.’(산문집 육성과 가성 중)
제11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인 김광규 한양대 독문과 교수(62)는 ‘속임수도 에움길도 모른채’30년간 우직하게 시를 써 온 사람이다. 변하는 세상속에서, 아무도 모를 소릴 써야 시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일, 누구나 알 수 있는 시를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용기를 필요로 했다.
“변하지 않음은 제 신조에 속하는 것이겠죠. 안 그래도 변해가는데 왜들 그렇게 변하려 하는지…. 지식이 아니라 체험에서 나온 시가 좋은 것 입니다. 저는 은유의 힘을 믿습니다.”
김씨는 시간 날 때 책에 손이 가는 것을 ‘나쁜 버릇’이라고 말한다.
남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자기 생각이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씨는 형이상학적 상징어가 난무하는 현대시를 ‘외잡스럽다’고 말하며 허황된 언어의 나열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는다.
김씨에게 ‘말에 기교부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김씨는 체험했기에 고독이란 단어를 부끄럼없이 쓸 수 있고, 독문학 박사임에도 ‘아름다움과 도덕감정’은 어려운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일상어로 삶의 본질을 ‘척결’하는 시편들을 김씨는 스스로 ‘범속하다’고 평하지만 문단은 줄곧 박수를 보내왔다.
“몇 번씩 쓰고 지우며 이것을 과연 시라고 할 수 있을까 되묻곤 합니다. 시는 안과 겉, 기의(記意)와 기표(記表)가 일치해야 좋은 것입니다. 사과는 빨갛게 익은 것 겉모습만으로도 아름답지만 먹어서도 맛이 좋아야 하지 않습니까.” 김씨의 작품은 번역의 장벽을 뛰어넘어 미국 일리노이 주 초등학교 교과서, 독일 디벨트지 등에도 실렸다.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처음 만나던때’는 초심과 경어(敬語)의 마음을 강조한 것.
‘기억하십니까/ 앞으로만 달려가면서/뒤돌아볼 줄 모른다면/구태여 인간일 필요없습니다 ’(‘처음…’중) 등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