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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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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말의 정치학] 16. 자유(自由)

민주주의를 하극상이라고 번역한 에도 말기의 일본인들은 자유를 또한 "와가마마"(제멋대로)라고 번역했다. "지금 대천세계는 제멋대로의 형세로 나가고 있으므로 "라고 번역된 자바 총독의 편지가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자유로운 교류를 원한다는 것을 제멋대로 하겠다는 말로 안 막부관리들은 더욱 외국인들을 경계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일본 초기의 외래어 연구를 해온 야나부 교수는 우리가 오늘날 쓰고 있는 자유라는 번역어 역시 그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 "自由"라는 말은 옛날 한자어에서도 멋대로의 뜻으로 써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百事自由"가 그것인데 자기네들이 옹립한 천자를 자기들 멋대로 조종했다는 뜻이다.

역시 자유의 시원은 서구문명인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도 서방사람들은 자유는 있지만 지식이 없고 동방사람들은 지식은 있으나 자유가 없다고 한 대목이 나온다.

피는 물보다 짙다고 하지만 자유는 그 피보다 더 짙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근대 정치사상의 조류다. 동족과 핏줄을 끊고 자유를 찾아 나서는 난민이나 이민, 그리고 망명자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우리 자신이 겪었던 동족상쟁의 비극도 "자유는 피보다 짙은 것"이라는 명제에서만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런 희생과 아픔을 통해 얻은 자유가, 민주화의 투쟁으로 지키고 키워온 자유가 "제멋대로"와 "떼쓰기"로 번역돼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오늘의 정치 상황은 "대한민국"을 "떼한민국"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근심스럽다. 원래 "멋"이라는 한국말은 일탈성의 미학을 나타내는 "멋"있는 말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멋은 "제멋대로"라는 나쁜 말로 전락한다. 자유는 왕양하다. 하지만 남의 자유를 침범하는 자유, 자유의 울타리를 쓰러뜨리는 자유까지 허용되는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익집단의 과격한 불법 시위가 때때로 스스로의 모순에 빠지는 경우도 그 때문이다. 그 시위를 가능하게 한 바로 그 자유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자유를 잃어보지 않고는 자유의 그 절실함을 모른다. 일제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던 노년세대들은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 (FREEDOM IS NOT FREE)을 몸으로 배웠다. 그래서 이따금 젊은 세대들의 행동을 걱정하는 것은 머리가 굳어서가 아니라 그 세대들이 젊었을 시절 눈물을 흘리며 암송했던 시 한편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잡기장 위에/책상과 나무 위에/모래 위에 흰 눈 위에/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로 시작하여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만약 이 시가 대학 시험문제에라도 나온다면 그래서 너의 이름이 무엇을 가리킨 것인지를 묻는다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이 시의 맨 끝에 나오는 단어 "자유여!"라는 이름을 맞힐지 궁금하다.

2003/11/2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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