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타계한 석동 윤석중(石童 尹石重) 선생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메마른 어린이들의 가슴에 샘물과도 같이 순수한 노래를 들려준 한국 아동문학의 선각자였다. 그가 청년기에 지은 ‘기찻길’(‘기찻길 옆 오막살이…’) 등의 동시는 이후 노래로 만들어져 온 국민이 함께 부르는 애창 동요가 되었다.
여덟 살 때 겪은 3·1독립운동의 신선한 충격을 ‘붕붕 수만 마리 벌이 나는 듯한 함성소리와 총소리’로 간직하며 자란 석동은 열 살 때 뒤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버젓한 우리말이 있는데 왜 선생님들은 일본 동요만 가르치나’라는 의문을 품고 민족의식에 눈뜨기 시작했다. 열두 살 때 소파 방정환의 주도로 열린 첫 번째 어린이날 행사를 보고 ‘어린이의 정신을 일깨우는 데 민족의 미래가 있다’는 점을 깨달아 아동문학에 정진할 뜻을 품게 된다. 열세 살 때 첫 작품 ‘봄’을 발표해 등단한 그는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극 ‘올빼미 눈’으로 가작 당선하면서 ‘학생 문인’으로 필명을 날리게 된다. 1929년 작곡가 홍난파와 교유하면서 힘을 합쳐 ‘퐁당퐁당’ ‘낮에 나온 반달’ 등의 동요를 탄생시켰다.
이 해 광주학생운동으로 민족의식에 눈뜨게 된 그는 다니던 양정고를 자퇴했다. 당시 만세운동을 논의했으나 ‘며칠 뒤면 졸업인데…’라며 주저하는 친구들에게 “나라 없는 수모를 겪으면서 그깟 졸업장이 무어라고…”하며 일갈한 뒤 자퇴서를 제출한 일화는 유명하다. 1932년 ‘엄마 앞에서 짝짜꿍’ 등이 실린 ‘윤석중 동요집’을 첫 출간한 뒤 33년 방정환의 뒤를 이어 1년간 ‘어린이’지의 편집장을 지냈다. 42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으나 곧 징용을 피해 귀국, 은신했다가 광복을 맞아 ‘새나라의 어린이’ ‘어린이날 노래’ ‘졸업식 노래’ 등을 발표하면서 제2의 창작 황금기를 맞았다.
1956년 ‘새싹회’를 창립한 그는 소파상, 새싹문학상 등을 제정해 어린이 문학운동 후원에 심혈을 기울였다. 1994년 83세의 고령에도 동요집 ‘그 얼마나 고마우냐’를 펴내는 등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접한 아동문학가 어효선씨(78)는 “고인은 새싹회 창립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맡아 하면서도 언제나 어린이의 마음을 닮은 낙관적 생각을 가졌다”며 “그가 쉽게 생각한 일은 결국 그의 생각대로 쉽게 풀리곤 했다”고 회고했다. 광복 후 을유문화사에서 함께 일했던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91)은 “6·25전쟁 때 피란살이의 궁핍한 생활 중에도 동시 동화 창작의 펜을 놓지 않았던, 열정에 찬 사람이었다”며 애석해 했다.
아동문학가 노원호씨(57)는 “선생은 3년 전까지도 매달 후배 아동문학가들과 오찬모임을 가졌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린이들에게만은 항상 밝은 마음을 심어주어야 한다던 고인의 말씀이 귀에 생생하다”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