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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전집 5권 펴내는 김춘수 시인

"천사된 아내의 입김이 내 詩를 흔들고 깨워"

대여(大餘) 김춘수(金春洙·82)가 반세기 넘는 시력(詩歷)을 정리한 ‘김춘수 전집’(전 5권·현대문학) 첫 권인 시 전집을 냈다.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 이후 발간된 25권의 시집에 실린 작품 전부와 ‘쉰한 편의 비가’(2002년) 이후 최근작까지 모두 수록했다. 2·3권 시론 전집은 이번 주말에, 4·5권 산문 전집은 오는 5월 잇따라 나올 계획이다. 환갑을 맞던 1982년 문장사에서 전집을 묶어낸 이후 22년 만이다.

지난주 경기도 분당 신도시 자택에서 만난 시인의 목소리에는 묵직한 힘이 들어있었고, 굵은 뿔테 안경 너머의 눈은 형형한 빛을 발했다. 마침 세배차 이곳을 찾은 조영서 시인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선생은 마치 시를 위해 태어나신 것 같다”고 했다.

―팔순을 넘기신 나이에도 활발하게 시를 발표하고 계십니다.

“먼저 간 아내(1999년 작고)가 요즘 나의 시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가 되고 있어요. 이런 나이에 이만큼 시를 쓰는 것은 아내가 나를 흔들어 깨워주고 이끌어주기 때문이죠. 아내는 내 곁을 떠나서 나를 더욱 시인으로 만들어주고 있어요.”

텅빈 거실을 바라보는 노(老)시인의 눈가에 얼핏 붉은 꽃물이 번졌다. ‘여보, 하는 그 소리/ 그 소리 들으면 어디서/ 낯선 천사 한 분이 나에게로 오는 듯한/’(‘제1번 비가’) ‘지금 꼭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하고 싶은데 너는/ 내 곁에 없다.’(‘제22번 비가’ 중)

―문학, 특히 시에 들어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열여덟 살 일본 유학 시절 고서점에서 우연히 릴케의 일역 시집을 만났습니다. 하나의 계시처럼 왔습니다. ‘이 세상에 시가 참으로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법학을 포기하고 문학을 택하게 됐습니다. 릴케와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50년대까지 관념적 시를 주로 썼죠.”

―고향(통영) 선배인 청마 유치환 등 청록파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나요?

“청마와는 통영에서 같이 문화운동을 한 적은 있습니다만, 서로 독자적인 시를 썼죠. 미당(未堂)의 초기 시와는 비슷한 면이 있지요. 미당은 나에게 ‘대여(大餘)’라는 호를 지어 주었어요. ‘남들 다 앞으로 보내고 뒤에 천천히 처져서 (길을) 가라’라는 해설까지 붙여서요.”

―경쟁 상대로 생각한 시인이 있었습니까?

“내가 라이벌 의식을 가진 유일한 시인은 김수영이었습니다. 평생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김수영을 의식해 저는 현실 비판적인 시는 거의 쓰지 않았죠. 수영이 다 해버렸거든요. 수영의 동생으로 현대문학 주간을 지낸 김수명이 ‘오빠도 김 시인을 많이 의식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는 흔히 ‘무의미의 시’라고 불립니다.

“60년대 중반 이후 의도적으로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시는 관념(철학)이 아니고 관념 이전의 세계, 관념으로 굳어지기 이전의 소프트한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시에서 의미를 배제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시에서 의미를 제거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합니까?

“사람들은 생선이나 과일이 들어있는 깡통을 놓고, 그 안의 내용물만 보고 정작 깡통 자체는 보지 않습니다. 깡통의 내용물을 버리고, 그 깡통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내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세에 어떤 시인으로 시사(詩史)에 기록되길 원합니까?

“시를 통해 언어 실험을 극한까지 시도했던 시인으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사상의 극한, 형식 실험의 극한까지 말이죠.”

2004/01/25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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