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전용론’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게 비행기를 가리키는 ‘날틀’이란 말이다.
공처가를 뜻하는 ‘아내 무섬쟁이’도 있다. 사실 이 말들은 현실에서 사용되기가 어려워 한글전용론자들도 이미 수십년 전에 폐기처분한 극단적 사례들이다. 그런데도 ‘한글 전용 날틀’로 이어지는 연상작용 속에는 은연중 한글 전용론은 별종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또 하나의 선입견이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평소 이런 현실을 가장 안타까워한 이가 26일 별세한 눈뫼 허웅 한글학회 이사장이었다. 일생을 한글 지킴이로 살아온 눈뫼였지만 그렇다고 “한자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비판한 것은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는 경우에까지 굳이 한자어를 쓰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가람이 강(江), 뫼가 산(山), 즈믄이 천(千), 온이 백(百)에 쫓겨난 현실을 그는 가슴 아파했다. ‘갈 곳’을 행선지(行先地), ‘때리다’를 구타(毆打), ‘싹’을 맹아(萌芽), ‘잘못’을 과실(過失)이라고 쓰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 목적(目的)·만족(滿足)·보석(寶石)·철학(哲學) 같은 어휘들은 이런 개념을 표현하는 우리말 어휘가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우리말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며 환영했다.
▶눈뫼가 평생을 국어학 연구에 바치기로 결심한 것은 동래고보 3학년 때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의 ‘우리 말본’을 읽고서였다. 이런 그를 당시 동래고보 교사로 있던 권중휘(나중에 서울대 총장)가 격려했다. 연희전문을 택한 것은 외솔이 거기 교수로 있기 때문이었다.
눈뫼의 한글운동에는 “제 나라를 생각지 않는 학문이란 있을 수 없다”는 학문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는 민족의 자립과 외세에 대한 정신적 무장을 강조한 외솔의 저술 ‘조선민족 갱생의 도’에 영향받은 것이었다.
▶그의 마지막 저서는 2002년 84세 때 200부 한정판으로 출간한 시조집 ‘못잊어 못잊어서’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뜨자 못 견디게 그리워 7개월 동안 시조 형식으로 일기를 쓴 것이었다.
“창문 밖 저 꽃나무/ 잊지 않고 또 벙그네// 지난 해 이맘때/ 너를 보고 반기던 사람// 지금은 간 데 없고/ 먼 하늘만 보인다.”(‘저 꽃은 또 피었건만’ 전문) 외곬 소신으로 한글운동을 펴 나가는 과정에서 적도 있었고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그의 이런 멋이 외곬 인생을 받쳐줬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