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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른 이 175181197 명
깁고 더함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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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지킴이 이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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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이틀 동안의 ‘탄핵정국’이 남긴 것 가운데 하나가 헌법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헌법 한 귀퉁이에서 죽어있는 조문으로만 알았던 대통령 탄핵이 현실의 일이 될 수도 있으며, 직접 촛불을 높이 쳐들면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단지 듣기 좋은 선언적인 조항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던 것이다.
이렇듯 절대적인 힘을 갖는 헌법이 사실은 모조리 뜯어고쳐야 할 만큼 엉망진창이란다. 일본어투, 영어투 표현에다 잘못 쓴 한자어 투성이로 ‘돌팔이 의사에게 성형수술을 받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중·고 평교사 때부터 우리말글 바로쓰기 운동을 펼쳐왔으며 지난주 ‘2004년 한글학회 우리글 지킴이’로 뽑힌 이수열 솔애울 국어순화연구소장(76)을 서울 불광동 자택에서 만나 우리말과 글을 향한 그의 사랑과 열정을 들어보았다.
이수열은 헌법 제1조 2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의 ‘으로부터’와, 10조 ‘모든 국민은 ∼할 권리를 가진다’의 ‘가진다’는 영어식 표현인 만큼 각각 ‘에게서’ ‘한테서’와 ‘국민에게 ∼할 권리가 있다’로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3조의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들이다’로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모든 영역에 있어서’나 ‘중대한 교전상태에 있어서’ 등에서 나오는 ‘있어서’도 일본어 번역투의 군더더기인 만큼 아예 빼버리는 게 옳고, ‘민사상 형사상 책임’에서도 불필요한 ‘상’을 빼고 그냥 ‘민사나 형사 책임’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수열은 “헌법은 나라의 최고법이자 모든 법의 모법(母法)인 만큼 프랑스 헌법처럼 문법교과서 구실을 해야하는데도 ‘불량하고 졸렬한 악문(惡文)과 졸문(拙文)의 경연장이 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수년전 펴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대한민국 헌법’이라는 책에서 헌법 전문과 본문, 부칙을 어법에 맞게 고쳐 쓴 ‘대체 헌법’을 제시한 이수열은 “다음 개헌 때는 모든 오류를 함께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 헌법 오류 투성이 개헌때 바로 잡아야 -
우리말글이 신음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이수열은 문민정부가 출범한 93년 초 3부요인과 정당대표의 신년사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군부독재를 끝낸 김영삼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다는 그는 “대통령 취임사를 기초할 것으로 알려진 이경재 공보수석에게 글쓸 때 유의할 사항을 적어 보냈으나 나중에 취임사를 보니 내 의견이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아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사 가운데 ‘오늘 탄생되는 정부’는 ‘오늘 탄생한 정부’로, ‘보다 자유롭고’는 ‘더 자유롭고’로, ‘품위가 존중되는’은 ‘품위를 존중하는’으로 고쳤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이수열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할 때도 같은 일을 되풀이했으나 역시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평소 신문 칼럼 등에서 중3 정도의 작문 실력을 보여준 어느 학자가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 기초에 참여한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취임사를 보니 ‘혹시 했는데 역시’였다”고 말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는 유의사항과 함께 ‘취임사 쓰는데 참고하라’며 자신의 저서 3권을 청와대로 보냈으나 ‘우리는 책을 받지 않는다’는 답신과 함께 되돌아왔다고 한다. 이수열은 “아마도 내 책을 뇌물이라고 판단한 듯하다”며 “대통령 측근들이 우리글 바로잡는 책은 되돌려 보내면서 돈은 왜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뼈있는 농담을 했다.
이수열에 따르면 우리 말과 글을 어지럽히고 더럽히는 원흉은 많이 배워 아는 척은 하지만 올바른 말과 글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무식한 지식인’들이다. 교수, 학자, 언론인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그릇된 말글을 퍼뜨리고 교과서도 오류투성이로 만들고 있으며, 이들의 말과 글을 듣고 배운 뒷세대들이 다시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무식한 유식층이 입에 달고 다니는 조잡한 상투어, 당치 않은 비유, 조잡한 신조어 등으로 인해 우리 말글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 기자·학자·교수에 ‘빨간펜’ 잘못 지적 -
이수열은 지식인들이 쓰는 조잡한 상투어나 당치 않은 비유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흔히 ‘우리 교육의 현주소’나 ‘한국 정치의 현주소’라는 말을 쓰지만 현주소는 어느 특정한 장소인 만큼 ‘∼의 현상, 상태, 사정, 현실’ 등으로 고쳐 써야 한다는 것이다. 또 걸핏하면 ‘출사표를 던지다’란 표현을 하지만 ‘표(表)’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고 그 중에서도 ‘출사표’는 제갈공명이 출병을 앞두고 촉의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올린 글로서 보통명사이자 고유명사인 만큼 출사표 운운은 당치 않다고 한다. 동양역사를 통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표는 제갈공명의 출사표와 고려 인종때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으면서 임금에게 올린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 두 가지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냥 ‘출마하다’로 표현해야 옳다는 것이다.
정치판에서 사용빈도가 높은 ‘합종연횡(合從連橫)’도 도마에 올랐다. 이수열은 “합종연횡은 중국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군사외교 전략”이라면서 “입당료를 받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철새정객들에게까지 합종연횡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시대의 합종연횡이나 입당료 입당이나 그 본질은 정치적 이해관계인 만큼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반문에 그는 “취지는 그렇다하더라도 할 말이 아니다”라며 “그냥 ‘오합지졸들의 이합집산’ 정도면 충분하다”고 단호히 말을 잘랐다.
이수열은 28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창만리 송라동에서 나무꾼의 아들로 태어나 봉일천국민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이다. 그가 약간은 촌스럽지만 예스러우며 ‘단아한 한복’과도 같은 경기도 표준말씨를 정확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고향 덕이다. ‘솔애울 국어순화연구소’의 ‘솔애울’은 ‘송라동’의 순 우리말 표기이다. 44년 총독부 시행 제32종 시험(국교 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해 45년 모교인 봉일천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것을 시작으로 중등교사 검정시험을 거쳐 93년 서울여고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서울 경기 일원의 일선학교에서 48년을 평교사로만 보냈다.
- 48년 외길 ‘우리말 바로쓰기’ 명저 발간 -
외솔 최현배의 ‘우리말본’ ‘한글갈’ 등 수많은 문법서와 전문서적으로 독학을 하면서 우리 말과 글에 이론적인 안목을 갖추게 된 그는 9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국어 순화운동에 나섰다. 우선 신문기사를 읽고 잘못된 부분은 빨간 사인펜으로 밑줄을 그은 다음 바로잡아 글쓴이들에게 우편으로 보내주는 방식부터 시작했다. 웬만한 신문기자와 학자, 교수들은 한번 이상 그에게 지적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와 함께 ‘우리말 우리글 바로 알고 바로 쓰기’란 책도 펴냈다. 이 책은 고 이오덕 선생의 ‘우리 글 바로쓰기’와 함께 이 분야에서는 기념비적 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에게 지적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고마워하면서 ‘유치원 때부터 박사학위 딸 때까지 한번도 이런 지도를 받지 못했다’ ‘앞으로 글을 쓸 때 명심하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어느 대학교수는 “혹시 이 편지도 빨간 펜으로 박박 밑줄을 치실 것 같아 겁이 난다”고 적어보내기도 했다.
평교사 이수열이 ‘개정목표’로 삼은 것은 우리 말글뿐만이 아니다. 교육을 체제유지 또는 통치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교육현실 또한 그에게는 분노의 대상이었다. 서울시내 어느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 이수열은 교실의 책걸상 크기가 모두 똑같아 덩치가 큰 3학년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개선을 요구했다가 헌병장교 출신의 교장에게 ‘죽여버리겠다’는 폭언과 함께 구타를 당했다. 장학사가 온다고 ‘인절미를 떨어뜨려도 그냥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교실 바닥과 복도를 반들반들하게 윤을 내는 환경미화작업에 학생들을 동원하는 것을 보고 항의했다가 ‘사상이 의심스러운 불순분자’로 매도당했던 일도 부지기수였다. 이수열은 “비록 가입은 하지 않았지만 전교조의 취지에 적극 찬성한 것도 바로 이같은 현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기사가 나오면 꼭 잘못을 바로잡아 편지로 보내주시라”고 부탁하자 이수열은 “너무 의식하면 힘이 들어가니까 평소대로 하라”며 껄껄 웃었다. 신문사 밥 20년 먹으면서 알게 모르게 몸에 밴, 얼마나 많은 잘못된 글버릇과 외국어 찌꺼기 따위가 그의 뾰족한 붉은 사인펜 끝에 적발될 것인가.
2004/05/16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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