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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나를 찾아 낙향… 문학관 차렸다`

(::폐교된 모교에 창작교실 연 오탁번 교수::)
“29세때 대학교수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돈을 조금만 벌어 글 쓸 여건만 된다면 교수직을 그만두고 글만 써야지 생각했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그 좋은 대학 교수자리를 왜 그만두려 하느냐며 말리곤 했어요. 나 역시 하루하루 생활에 쫓겨 꿈을 차일피일 미루며 살아왔는데, 몇 년 전부터는 진짜 서울의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를 견딜 수 없었어요. 이제 도시를 떠 나야겠구나, 도시를 버리고 나 자신을 찾아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죠.”

시인이자 소설가인 오탁번(61·고려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교수 가 30여년간 버텨온 서울을 버리고 내려간 곳은 고향인 충북 제 천시 백운면. 2년전 그는 자신이 다녔던 백운초등학교의 폐교된 애련분교를 매입해 문학관으로 꾸며냈고 지난 3월 문예창작교실을 시작하며 ‘원서문학관’의 문을 정식으로 열었다. ‘원서’ 는 백운면의 조선시대 지명으로 제천에서 서쪽으로 가장 멀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30여년만에 고향이라는 시원으로 돌 아가 고향에게 ‘원서’라는 옛이름을 돌려준 셈이다.

지난주 ‘원서헌’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부인인 시인 김은 자(56·한림대 국문학과)교수와 함께 마당에 심은 딸기를 따고 있었다. 그는 월 화 수요일에는 고려대에서 강의를 하고,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원서헌에 머물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반쪽짜리 낙향이지만 곧 서울 생활을 마무리하고 그저 원서헌 주인으로 살아갈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지난해 1년을 꼬박 교실 3개짜리 슬래브 건물을 강의실, 사무실, 자료전시실로 개조하고 주변에 나무와 꽃을 심는데 보냈다고 한다. 그가 꽤 자랑스레 보여주는 자료실에는 자신이 갖고 있던 시인 사진, 육필 원고 등 각종 자료와 지난 1년간 직접 구매한 오래된 시집들이 빼곡히 전시돼 있었다. 지난 3월부터 등단· 미등단 문인 10여명을 대상으로 매주 금요일에 실시하는 문학창 작교실에 이어 앞으로 작은 시비정원, 곤충·야생화 정원도 가꿀 예정이다. 거창한 곤충정원이 아니라 꽃과 풀이 자라면 자연스레 풀벌레가 찾아오고, 그러면 그곳이 곤충정원이 아니겠냐고 이야기한다.

지난해 여름에는 자신의 꼬마 후배인 백운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어린이 시인학교를 열어 할아버지 선생님으로 불렸던 그는 이를 여름 방학 연례행사로 진행할 계획이다. 또 학교건물 옆에 있는 사택을 방 두칸짜리 문인 집필실로 개조했고 혹시 자신 이 집을 비운 사이에 찾아올 그 누군가를 위해 문에 항상 열쇠를 꽂아두고 있다.

또 학교건물 주변의 700평의 텃밭에는 땅콩, 고추, 상추, 매실 등 온갖 먹을거리를 심었는데 이는 백운면에 살고 있는 반가운 국민학교 동창 6명이 오가며 도와준 결과라고 설명했다.

“요즘엔 지식인들이 기회만 되면 매명(賣名)하려 하고, 장관하고 싶어 안달이다. 하지만 옛 선비들은 나이가 들면 낙향해 서당을 차리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임금이 벼슬을 하라고 불러도 사직 상소만 올렸다. 나이가 들면 세속을 떠나 자기를 돌아봐야 한 다.” 이렇게 세태에 일침을 가한 그는 “요즘처럼 모든 분야를 젊은이들이 쥐고 흔드는 시대엔 나이 들어가면서 스스로 무력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물러나는 때야말로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는 천등산과 박달재 사이, 반딧불이와 수달이 사는 맑은 백운 천 옆, 봄이면 벚꽃잎을 날리고, 여름엔 400년된 느티나무가 큰 그늘을 드리우는 원서헌을 좋은 문학관으로 키워내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볼 수 있는 진짜 좋은 소설 한편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아침에 해 뜰 때 일어나, 해 지면 잠을 잔다. 자연과 리듬이 같아졌다. 음풍농월하는 것이 아니라 봄이면 언땅을 뚫고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자연이야말 로 그 어떤 소설보다 위대한 명작이라는 것을 느낀다. 글을 쓰고 싶다. 스물 아홉,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글을 쓰고 싶던 그때의 꿈을 이제야 시작한다.” 그는 문학관이 어느 정도 자리잡으면 부인에게 문학관 주인자리 를 내주고, 자신은 산 속에 항아리를 묻고 그 속에 들어앉아 글 을 쓰고 싶단다. 그는 벌써 자기 몸이 들어갈 커다란 항아리를 학교 건물 뒤편에 사놓았다.

2004/05/31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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