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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남의 할아버지는 꼭 `어르신`으로

잘못된 호칭 고치기 15년째 최훈영씨

지난 1월 7일 중앙일보 편집국으로 제보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대구의 한 독자라고 했다.

"1992년 국립국어연구원이 발간한 `표준화법`이란 책자가 오류 투성이입니다. 나랏돈으로 우리 말을 연구하는 데서 펴낸 책이 이렇게 엉터리니 원…."

그는 이 책의 오류가 81~103쪽까지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82쪽에 `아버님.어머님은 남의 부모님을 높이는 것`이라고 돼 있는데 사실은 `며느리가 시부모님을 부르는 존칭`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선뜻 와 닿지 않았지만 그날 대구 대명동의 한 다방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최훈영(崔勳永.51.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 그는 근처 한 한방병원에서 일하는 한학과 예절에 밝은 사람이었다. 최씨는 스스로를 `말(言語)의 교통순경`이라고 소개했다. 언젠가부터 주변에 패륜에 가까운 말이 넘쳐나 이를 바로잡는 일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길 가는 노인을 보고도 `할아버지``할머니`란 말을 예사로 써요. 아니 할아버지라니…. 그 사람과 피가 섞였어요. 살이 섞였습니까. 아버지가 한 사람이듯 할아버지도 한분밖에 없습니다. 가족끼리만 쓰는 가정언어입니다. 이럴 땐 `어르신`이라고 해야지."

가정언어를 밖에서 호칭으로 쓰면 혼란이 온다는 것이다. 그는 복사한 `표준화법`(정확히는 `표준화법해설`)을 내밀었다. 틀린 부분마다 새까맣게 고쳐져 있었다. 며칠 전 다시 그를 만났다.

최씨는 틈만 나면 주변에서 무심코 내뱉는 잘못된 호칭이나 언어예절 등을 지적한다.

그래서 초.중학 교과서의 잘못을 고쳤고, KBS.MBC 등 방송사로 전화를 해댄다. 학생이나 학모를 상대로 강연도 100차례 이상 했다.

그는 이런 일을 한 지가 올해로 15년째다. 경주 최씨 종중(宗中) 일이 계기였다고 한다.

1990년 그는 다천정(茶川亭.동구 지묘동)에서 아이들 40여명을 모아 놓고 닷새간 효도언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문중 어른들이 "요즘 애들 말이 너무 거칠어진다"는 지적을 한 때문이었다.

족보 보는 법부터 가르쳤다. 그 자리에서 촌수를 배우던 한 아이가 느닷없이 `할아버지는 2촌`이라는 주장을 폈다. 할아버지가 2촌이라니? 최씨가 따져 묻자 그 아이는 도덕 교과서에 그렇게 나온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직계는 대수에 관계없이 1촌이잖습니까."

그는 당장 고치라고 교과서를 만든 곳에 항의했다(교육인적자원부는 올해부터 중학교 도덕 책에서 2촌으로 그린 계촌도를 삭제했다).

다천정에선 아이들에게 `어쨌어요` 등 불공(不恭)스런 말도 `~까``~다``~오` 등 공손한 종결형으로 고치도록 했다.

"대구에서 부산.서울로 교육 대상을 넓히고, 다른 문중으로도 차츰 전파시켰습니다."

그의 `단속`은 거침이 없다.

TV에서 잘못 쓰는 말을 들으면 메모했다가 바로 이메일이나 전화로 따진다. 방송사에 보낸 이메일만 벌써 1000통이 넘을 정도다. 그는 2년전 교사.군인 등과 `효도언어보존회`를 만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잘못된 말을 지속적으로 고치기 위해서다.

KBS의 `6시 내고향`이란 프로그램 등은 이제 `할아버지` 대신 `어르신`을 쓰고 있다. 최씨는 대구은행의 현금자동지급기에 붙은 `누르세요`란 표현도 모두 `누르십시오`로 고쳤다.

4년전부터는 교과서를 뒤져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교육부총리와 전화로 설전을 벌인 일도 있다. 수학 책은 고쳐졌고, 국사 책이 아직 고쳐지지 않아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최씨는 네살때 서당을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명사숙의 서석진 등이 그의 스승이다. 경상대 국어교육과를 나온 그는 그곳에서 석사학위도 받았다. 진주에서 1년 정도 교편을 잡기도 했다. 지금도 언어문제로 벽에 부닥치면 은사인 여증동(72)교수와 상의한다. 그는 집에서도 효도언어를 실천한다. 부모는 `아베``어메`로 부른다. `아빠`란 말은 쓰지 못하게 해 자녀(2남1녀)들은 불편해 한다.

물론 최씨의 이 같은 말 바로잡기 주장이 완벽한 게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국립국어연구원 관계자는 "그의 지적이 경청할 대목이 많은 것은 틀림없지만 일부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도덕교과서 바로잡은 사례=최씨는 지난해 `도덕교과서 바로잡기`(가람출판사.사진)란 223쪽짜리 책을 펴냈다. 이 책은 그가 2002년 배달말교육학회에서 발표한 `초등.중등 <도덕교과서 2002년> 바로잡기`를 보완한 것이다. 그가 도덕 책을 한장씩 넘겨 가며 잘못을 발견한 뒤 고친 것들이다. 사례 몇가지를 소개한다.

<초등학교>

▶안녕하세요→안녕하십니까.안녕하셨습니까
▶옆집 할머니→옆집노파.옆집노인.옆집늙은이
▶이 구두는 내 아버님이 만들어 주신 구두라네→이 구두는 우리 아버지가 만드신 구두라네(아들.딸이 사용하는 말은 `아버지``어머니`가 되고 며느리가 사용하는 말은 `아버님``어머님`)

<중학교>

▶우리 동네에 심술 궂은 아저씨 한 분이 계신데→우리 동네에 심술 나쁜 사람이 하나 있는데(아저씨는 가정언어로 남남 사람에게 사용해선 안되며, 나쁜 사람을 한 분이라 높이는 것은 모순)
▶저희 어머니께서는→우리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나에게→아버지가 저에게(부모 뒤에는 님을 붙이지 않는다)

2004/07/0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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