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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타계한 김춘수 시인 시세계

탈관념·탈역사 ‘무의미 시’
한국 모더니즘 정점으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꽃’ 전문)

29일 타계한 대여(大餘) 김춘수(1922~2004)는 스스로 ‘무의미 시’라 이름지은 독특한 시적 세계를 구축한 시인이었다. 그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시 ‘꽃’의 마지막 행에서 그가 ‘의미’를 향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는 이상한 노릇이다. 그가 나중에 이 시행을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로 바꾼 것은 ‘꽃’에서의 의미와 자신의 무의미 시론 사이의 마찰을 염두에 둔 때문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꽃’이 발표된 것은 1950년대 초였고, 그가 무의미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에 들어서의 일이었다. “관념, 곧 의미 이전의 존재 그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를 의미에서 무의미 쪽으로 과격하게 선회하게 만들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남천과 남천 사이 여름이 와서/ 붕어가 알을 깐다./ 남천은 막 지고/ 내년 봄까지/ 눈이 아마 두 번은 내릴 거야 내릴 거야”(‘남천’(南天) 전문) “구름 발바닥을 보여다오./ 풀 발바닥을 보여다오./ 그대가 바람이라면/ 보여다오./ 별 겨드랑이를 보여다오./ 별 겨드랑이의 하얀 눈을 보여다오.”(‘처용단장’ 제2부의 일부)

이미지와 이미지가 충돌하며 의미와 맥락이 통하지 않는 요령부득의 시행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춘수의 무의미 시들은 한국 모더니즘 시의 한 정점으로 일컬어진다. 30년대의 이상에 견주어지고, 90년대 해체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인간적 관념과 현실적 맥락을 사상한 채 순전히 언어의 리듬과 이미지의 자의적인 편집으로 이루어진 이 시들은 시인 자신의 말대로 역사와 의미를 향한 허무적 부정의 소산이었다. 좀더 사소하게는(?) 그와 어깨동갑인 시인 김수영이 4·19를 계기로 역사와 현실을 향해 맹렬히 달려 나간 데 대한 대타항으로서 그가 탈역사주의를 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문학의 지배적인 특징이 현실주의 내지는 역사주의라 할 때, 김춘수의 고독한 탈역사주의는 나름대로 평가받아 마땅해 보인다. 역사 허무주의와 그에 기반한 무의미 시로 치닫던 김춘수가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 치하에서 여당 국회의원으로, 이어서 방송심의위원장으로 ‘변신’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냉소적인 관찰자들에게 이런 변신은 그의 역사 허무주의의 필연적인 귀결로 비치기도 했다.

시인은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산문시집 〈서서 잠자는 숲〉(1993)과 러시아 주제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1997), 그리고 애끊는 사부곡(思婦曲)인 〈쉰한 편의 비가〉(2002)를 내놓았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필생의 작업은 지난 1월 무려 11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의 〈김춘수 시전집〉(현대문학)으로 갈무리되었다.

2004/11/29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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