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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한글학자의 핏줄

같은 웃는 모습이라도 눈웃음을 칠 때의 모양을 우리는 ‘생글생글, 싱글생글, 싱그레’ 등으로 표현한다. 입으로 웃는 모습은 ‘방글방글, 빙글빙글, 빙그레, 배시시’라고 한다. 눈웃음을 나타내는 의태어는 ‘ㅅ’으로 시작된다. 입웃음의 경우엔 ‘ㅂ’으로 시작된다. 우리말의 이런 ‘웃음 시늉말’의 법칙성을 발견한 이가 국어학자 건재 정인승(鄭寅承·1897~1986)이었다.

▶전북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건재가 우리말 연구에 몸 바치기로 결심한 것은 연희전문에 입학하고서였다. 수사학을 강의하던 위당 정인보가 “새벽 소리 찬 바람에…”라는 문장을 예로 들며 “한문에는 없는 우리말의 재미”라고 한 말이 가슴에 와 박혔다. 1936년 외솔 최현배의 권유로 조선어학회의 ‘큰사전’ 편찬 주간을 맡은 이래 광복 이후까지 20년 동안 사전 편찬작업을 주도, 우리나라 모든 국어사전의 본보기를 만들었다. 그 시대에 가로쓰기 사전을 생각했다는 건 지금 봐도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때는 일제 말기였다. 1942년 9월 30일 이극로 등과 사전편찬 일을 하다 밤을 꼬박 새우고 들어간 그는 집에서 형사들에게 잡혔다. 일제가 우리의 대표적 국어학자들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조작해 붙잡아다 고문한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장지영 이희승 이윤재 김윤경 등 33명의 석학들이 함흥경찰서까지 이송돼 물고문, 비행기 태우기, 동지들끼리 몽둥이로 서로 때리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았다.

▶“말과 글을 지키는 민족은 남의 민족 밑에서 노예생활을 해도 언젠가는 제 나라를 세울 수 있지만, 말과 글을 잃으면 그 민족은 사라지고 만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말 연구의 가시밭길을 가며 그는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건재에게 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자유, 나아가 존재 그 자체였다.

▶건재의 외증손녀인 재미교포 2세 여고생 이미한양이 미국 링컨기념관 개관을 기념해 열린 에세이 대회에서 일제 탄압과 할아버지의 우리말 지키기를 소재로 한 글로 대상을 받았다. “내가 아는 자유는 곧 내 언어의 자유”라며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고유 언어로 표현하고 그 고유 언어로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게 개인의 권리”라고 외치는 소녀의 모습이 당당하다. 이양의 에세이를 통해 일제 암흑기 한국인들이 모국어 수호를 위해 벌였던 투쟁이 ‘언어와 자유’의 관계를 일깨우는 소중한 사례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모국어에 일생을 바친 할아버지와 그 헌신의 가치를 알아보는 손녀의 대를 이은 합작품이다.

2005/04/22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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