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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한글날 559돌, '토종'보다 진한 한글 사랑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국어(프랑스어) 선생님은 말한다.

“비록 국민이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제 나라 말을 잃지 않으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짧지만 큰 울림으로 남는 글귀다.

# “한글은 정말 과학적인 문자네요.”

“이 동상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동상인가요? 책에서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에요.”

가을 햇살이 얼굴을 간질이던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중화전 옆에 있는 세종대왕상을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올려다보며 작은 탄성을 연발하는 ‘이방인’들이 있었다.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 한글 강좌를 듣는 마리나 사비노바 (22·여·러시아·왼쪽부터), 폽피엘 사치코(24·여·일본), 베텔(26·에티오피아), 유리 에리만(22·우크라이나)씨. 국적과 피부색은 다르지만 한글사랑은 ‘토종’ 못지않은 이들은 한글날 559돌을 앞두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한글은 복잡하지 않아 좋습니다. 자음과 모음이 만들어진 원리가 과학적이라 배우기도 싶고요.” 베텔씨가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국내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글을 교육하는 기관은 일부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한글교실을 빼면 거의 대학에 속해 있다.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만 현재 450여명의 외국인과 재외동포가 한글을 배우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립경제대에서 한국학을 전공한 마리나씨도 “한글은 외국인도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라고 말했다.

1960년대부터 외국 학자들은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에 주목했다. 당연히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산물 중의 하나” “간단하면서도 논리적이며, 고도로 과학적”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과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기리는 한글날을 “10월에 노는 날이 너무 많다”는 비문화적인 발상으로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했으니…. 조선시대 460여년과 일제시대 35년간 구박받고 핍박받던 한글은 아직도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 공포의 ‘받아쓰기’… 선생님에게 반말로 말해 망신도

사치코씨는 “중국어는 한자를 외워야 하고 일본어는 ‘가나’ 문자에 일본식 한자인 ‘간지’까지 알아야 글을 읽을 수 있는데, 한글은 자음과 모음만 익히면 문자를 읽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대학에서는 중국어를 전공했고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는 ‘세계인’이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하는 이들이지만 아직까지 ‘받아쓰기’는 넘기 힘든 벽이다. 키예프국립외국어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유리씨는 “한글 중 받아쓰기 시간이 가장 힘들다. 들리는 대로 적으면 꼭 실수한다”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어른이 된 한국인도 한글 맞춤법 때문에 마찬가지 경험을 하니 외국인에게야 오죽하겠나. 마리나씨는 “‘어’와 ‘오’ 발음이나 ‘ㅈ’ ‘ㅊ’ ‘ㅉ’ 발음이 구별하기 가장 힘들다”며 “받아쓰기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라고 말했다. 고통의 관문은 또 있다. 바로 높임말·낮춤말·예사말·반말을 사람에 따라 구분해서 써야 한다는 것.

베텔씨는 “나도 모르게 선생님에게 반말을 한 적이 있다”며 “지금도 나보다 나이 많은 형이나 누나와 이야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와 사과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 “한자어가 너무 많아 한글의 우수성이 반감돼요”

이들은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한국어엔 한자어가 너무 많아 뜻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유리씨는 “2년간 한자를 배웠는데도 신문이나 잡지는 아직 읽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베텔씨도 “한국어 단어가 대부분 한자로 돼 있어 뜻을 알기 힘들다”며 “그래서 요즘에는 선택수업 시간에 한자를 공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한자를 배웠던 마리나씨도 “한국어를 잘하려면 한자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들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유리씨는 “한국어를 빨리 익혀 한국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치코씨와 마리나씨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과 문화를 사랑하기에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텔씨는 에티오피아에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과학적인 한글을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하고 싶어요.” 베텔씨야말로 진정한 한글지킴이이다.

2005/10/06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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