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2월8일 일본의 언어학자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가 죽었다. 1882년 미야기현(宮城縣) 센다이시(仙臺市)에서 태어난 오구라는 도쿄제국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1911년 서울로 건너와 한국어를 연구했다. 그는 26년에 경성제국대학 교수가 되었고, 33년에는 도쿄제국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구라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두와 향가 연구의 개척자다. 그는 27년에 향가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뒤로도 고대 한국어와 한국어 방언 연구를 통해 한국어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국 고대 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향가의 해독은 부끄럽게도 일본인 학자들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인 아유가이(鮎貝)가 처용가, 서동요, 풍요 세 편을 해독해 1923년 `조선사 강좌`에 소개한 것이 그 효시다.
본격적 연구는 오구라가 1929년에 출간한 `향가 및 이두 연구`에서 돛을 올렸다. 오구라는 이 책에서 `삼국유사`향가 14수와 `균여전`향가 11수 등 현전하는 향가 전체에 대한 해석을 시도했다.
아무래도 한국어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외국인의 눈으로 고대 한국어를 읽은 것이어서 정밀함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받지만, 향가 해석사의 맨 앞자리에 오구라 신페이라는 이름이 굵은 글씨로 적혀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양주동은 오구라의 작업에 크게 자극을 받아 향가 연구에 뛰어들었고, 자신의 연구를 `조선 고가 연구(朝鮮古歌硏究)`(1942)로 집대성했다.
그 뒤 홍기문 이탁 김준영 김완진 같은 학자들의 손을 거치며 향가 연구는 깊이를 더해갔다. 그러나 이 고대 시가의 완전한 해독에 이르려면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오구라는 `향가 및 이두의 연구`외에도 `증정(增訂) 조선어학사``조선어 방언의 연구`등의 책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