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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지평선] 한글날과 눈뫼

해마다 한글날이면 그 분이 생각난다. 1997년 5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주최로 ‘세종대왕 탄신 600돌 기념 학술 대회’가 열렸다. 당시 문화부 기자로 세종대왕 탄신 600주년 시리즈를 맡은 터라 기사에 도움이 될까 해서 찾아갔다. 기조강연이 끝나고 허 웅(당시 79세) 한글학회장의 주제발표 차례가 됐다.

나는 한글 전용 문제에 있어 선생과 생각이 좀 다르지만 예의 짙은 은발에 검은 테 안경 하며 사진으로만 뵙던 국어학의 노대가를 처음 대면하는 자리라 호기심이 컸다.

■선생은 “앞 사람이 10분 초과하는 바람에 저한테 주어진 시간은 20분밖에 안 남았네요. 한 번 해 봅시다”하고는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 시간 조금 넘기는 것이야 예사인데 얼마나 시간을 잘 지키겠다고 저리 말씀하는가 싶어서 시간을 재 보기로 했다. 김해 출신인데도 경상도 사투리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청산유수나 현하달변도 아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발표는 이어졌다. 써 온 원고를 내리 읽는 것도 아닌데 한 마디 한 마디를 받아 적으면 그대로 완벽한 문장이 될 것 같았다.

■참으로 알아듣기 쉬웠지만 그 깊이는 진정 도저한 것이었다. 역시 대가로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세종의 정신을 저토록 간결하고도 풍부하게 설명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강연은 그 이후에도 들은 바 없다. 그런데 시간이 다 돼 가는 듯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2분 정도 남았다.

이 때 선생이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이제 2분 정도 남았네요”하더니 몇 가지 덧붙이고는 강연을 마쳤다. 내 시계로도 정확히 2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태두니 대가니 하는 호칭은 정녕 허언이 아니었다.

■오늘 560돌 한글날을 맞아 당시 사전 배포한 학술 대회 자료집을 들춰보니 선생의 발표문이 실려 있다. 그런데 직접 들은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다행히 말로 발표하신 거의 그대로가 《한글 새소식》 298호에 ‘세종 성왕의 정신 세계를 이어받는 길’(http://www.hangeul.or.kr/hnp/hss97/hs298_03.hwp)이라는 제목으로 잘 정리돼 있었다.

9년 전 나직한 어투로 하던 강연을 들으면서 겨울 산행을 좋아해서 친구들이 붙여주었다는 호 ‘눈뫼(눈 덮인 산이라는 뜻)’가 참 어울리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론 그대로 아름답고 논리적인 우리말과 우리글을 온몸으로 체현한 분이 아니었던가 싶다. 재작년 1월 타계하신 이후로 더욱 그리워진다.

2006/10/08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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