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고은 시인은 지인들의 전화에 시달렸다. 일년 중 거의 반절 정도는 해외 문학낭송회나 세미나에 초대돼 한국을 벗어나 살고 있는 고은 시인에게 해외 지인들은 유달리 많다. 그들이 지난해처럼 전화를 했다. 시인은 피로했다. 도대체 왜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지, 시월의 두 번째 목요일은 시인에게 고문의 날일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 짝사랑하는 노벨문학상은 이웃나라 일본에만 해도 벌써 두 번이나 차례가 돌아갔다. 이 때문에 국내 문단 안팎에선 언어와 국력, 그리고 정부 차원의 관심과 투자를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단골로 거론되는 문제는 번역. 한글이라는 독특한 전용 문자를 향유하는 상황이 세계문학의 중심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정부와 기업들이 전면에 나서 부지런히 세계 주요 언어로 한국인의 작품을 번역해 내는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는 한 국제사회에 한국문학을 제대로 각인시키기는 어렵다. 다행히 개선 노력이 가시화되고는 있으나 가까운 일본이 기울이는 노력에 비해서도 아직 멀었다는 지적이 많다.
매년 한국인의 수상 여부를 놓고 일희일비하는 것은 기실 허망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한국문학이 세계 중심을 향할 수 있도록 해외번역사업을 비롯한 기반을 닦아야 한다. 노벨문학상이 각기 다른 언어권과 문화권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심사기준을 지니고 있는지도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