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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말글사랑 외길

[이용호의 만화로 만난 언론계 사람들] 한겨레 말글 연구소장 최인호 교열부장

연신 담배를 문다.

어눌한 말투지만 음절마다 힘이 명확하다. 다듬지 않은 머리칼에 마른얼굴, 깊게 패인 주름, 코 중간에 걸친 안경 넘어 지긋한 눈매. '고집'이 묻어난다. 고집으로 둘째가라면 서운하다는 최씨다.

한겨레에서 우리말글(한글)은 각별하다. 한글전용, 가로쓰기를 최초로 도입했던 만큼 우리말글과 한겨레는 일맥이다. 우리말글의 '산파이자 파수꾼'인 최인호(54) 한겨레 말글연구소장, 19년을 교열기자로 살았다.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흔했던 '삐삐(무선호출기)'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 휴대전화는 물론이다.

"불편하지 않으세요?"

"뭐, 크게 불편한 건 없어요. 내근을 주로하니 회사전활 받으면 되고. 다만 요즘, 문자메세지를 받지 못해 간혹 경조사를 챙기지 못하는거. 그거 하나빼곤...없죠 뭐.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것도 괜찮아요."

대신 그의 사무실 책상 주변엔 온갖 사전들이 빼곡히 꽂혀있다. 휴대전화는 없어도 사전 없이는 못 사는 그다.

인터넷을 통해 남발되는 '외계어'의 문제점을 묻자, 오히려 외래어와 번역문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유행에 따라 자연생성, 소멸되는 외계어보다는 보도기사에 녹아있는 '다국적' 문장, 즉 섞이지도 않고 분리되지도 않은 한문, 영어, 일어의 비정상적인 조합이 더 큰 문제라고.

지난 6일, 열렸던 한겨레말글연구소 제2회 학술발표회에서 그는 '문체바로잡기 운동(문체반정)'을 역설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말글살이의 원인을 학교교육에서 끄집어 냈다. 정작 우리말글 교육이 아닌 외국어교육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특히 신입 기자들의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함을 금치 못할때가 많단다. '빨간펜 선생'으로 통할 만큼 그의 '따끔한'지적을 피하기가 힘들다.

우리말글의 맛깔스러움을 느끼고 싶다면 그가 연재하는 '맛글찻집'을 읽어보기 바란다. 우리말글에 대한 애정과 철학이 그윽하게 녹아있다. 우리말 바로쓰기에 앞장선 '외길'을 인정 받아 지난 19일 한글문화연대(대표 김영명)가 선정한 '올해의 우리말 사랑꾼'에 선정됐다. 덧붙이자면 '해침꾼'으로는 '앙드레김'이 선정됐다.

인터넷 포털 사전 때문일까? 종이사전을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고 있다. 자연히 사전사업을 접는 출판사가 많아지는 현실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더구나 국립국어원에서 조차 종이사전편찬을 중단하고 CD사전만을 편찬하기로 했다니 최 소장의 아쉬움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올바른 말글문화의 초석은 올바른 사전이 있어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농대 출신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당연히' 농대에 진학 했다는 최 소장. 그러나 시를 알게 되고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한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당시 국문학자로서 명성이 자자했던 무애 양주동 선생과 미당 서정주 선생이 포진한 동국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한글은 곧 그의 삶이 되었다. 졸업 후,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1981년 한글학회에 들어가면서 사전개정작업에 참여했다. 횟수로 8년을 근무하던 중 한겨레 창간소식과 함께 기자모집요강을 보게 되었다고.

"'한자혼용, 세로쓰기 편집'이었던 당시, 한겨레의 한글전용, 가로쓰기 도입은 큰 반가움이었지요.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주저없이 입사원서를 낸 게 벌써 19년이 흘렀네요."

교열부를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다. 간혹 타부서 기자의 기사를 읽곤'내가 쓰면 더 잘 쓸텐데' 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지만, 그는 교열기자이기만을 고집했다.

"자기가 뱉은 말, 자기가 쓴 기사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언론인이라면 더욱 그래야 하겠지요. 기사보다 더 무서운 게 말 입니다. 기사는 고칠 수 있지만, 말은 그러하질 못하잖아요. 그래서인지 말 수가 적어요." 그의 말을 듣다보면 조심스러운 느낌을 받는다. 구사하는 단어 하나 하나에 '한번더 생각한' 말글이 녹아 있다. 최대한 한자어, 외래어를 삼가한다. 한글생활이 아닌 '말글살이', 홈페이지가 아닌 '누리집'등 절제되고 정제된 표현들이다.

지난 해 11월 한겨레 말글연구소가 창립됐다. 현재까지 소장직을 맡고 있다.

말글연구소의 창립 의미는 누리집(http://www.hanmalgal.org)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글 중 일부를 인용해본다.

'한자 굴레에 매인 천년을 벗어나자 잇대어 로마자에 얽매여 말글이 헝클어지고, 영어 공부에 개인은 물론 온겨레가 휩쓸리는 형국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를 가다듬고 추스르는 일이 절박하며, 아울러 남북 말글 차이를 좁히는 일도 시급해졌습니다.'

'외국어나 외래어를 써야 전달이 잘되고 쉬운글이 되는 현실이 오지 않길 바란다.'는 그의 기고글에서 우리말글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애착과 집념 또한 느낄 수 있다.

19년 '말글사랑 외길'을 걸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그는 한모금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2006/12/25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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