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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이오덕 선생은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

어린이 교육·우리말 글쓰기…

이오덕은 교육과 글쓰기에 대한 신념을 알리기 위해 꾸준히 책을 썼을 뿐 아니라, 연구와 실천을 위한 단체에 참여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비롯해 어린이도서연구회,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마주이야기교육연구소 등이 그가 만들거나 관여한 단체들이다. 그리고 이 단체들은 여전히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1970년대 나온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일하는 아이들> 같은 책을 보고 전국 각지의 교사들이 이오덕에게 편지를 보내왔고, 이오덕은 이들을 모아 83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었다. 처음에 47명이었던 회원은 지금 1,000여명으로 불어났다.

교사 뿐 아니라 대학생, 학부모 등 일반인도 많다. 이오덕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이오덕 공부 모임’을 통해 이오덕의 책과 삶을 연구하고 있다. 초창기부터 이 단체에서 활동해온 김익승(화양초 교사) 상임이사는 “이오덕 선생은 늘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고 강조하셨다”면서 “선생이 말씀하셨던 ‘참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오덕의 삶과 교육사상>이라는 책을 낸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이주영(송파초 교사) 사무총장은 “선생은 각종 모임의 회보를 손수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국까지 직접 다녀올 정도로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면서 “떨어진 양복을 꿰매 입고 늘 신문지 위에 과일 껍질을 말려서 말려 거름으로 쓰실 만큼 검소한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25년간 인연을 맺어온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겉으로는 부드러운 분이었지만 자신의 이론과 정신에 참으로 단호했다. 책 제목 대부분을 직접 지었고, 편집이 조금만 잘못돼도 큰일이 났다. 작은 간행물 하나, 아이들의 편지 하나, 그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했다”고 말했다.

이오덕은 2003년 충북 충주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죽음을 밖에 알리지 말고 장례가 끝난 뒤 ‘즐겁게 돌아갔다’고 전하라”는 말을 아들에게 남겼다. 그가 떠난 곳에서는 그의 이름과 뜻을 이어받은 대안학교 ‘이오덕 학교’가 문을 열었다.

2007/06/06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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