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오락가락하네요. 더위가 지나가길 비는 마음으로 가을 이야기 좀 할게요.’건들바람’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요즘 같은 첫가을에 선들선들 부는 바람을 이르는 말로, ‘건들바람에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한 기운이 돈다’처럼 씁니다.”
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 연구개발국 성제훈(40·사진) 박사가 29일 오전 그의 편지를 기다리는 2700여 명의 독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의 일부다. 지난 2003년부터 5년째 매일 아침’우리말 편지’를 보내고 있는 성 박사는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오는 31일 한글학회의 ‘우리 말글 지킴이’로 위촉될 예정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가 선정한 30명의 ‘우리 말글 지킴이’ 중 공무원은 2003년 뽑힌 법제처 김태응 서기관에 이어 성 박사가 두 번째다.
전라남도 해남 출신인 성 박사는 전남대에서 농기계학을 전공하고 1998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오이생육장애의 비파괴 진단법 개발’로 박사 학위를 받은 농학자다. 그가 우리말과 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2003년 초 그의 강의를 들었다는 한 농민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
“그분은 제가 강의에서 쓴 용어들 중 도통 어려워서 알아듣지 못한 말이 많았다면서 거의 꾸중하듯 말씀했어요. 일본에서 건너온 농업 용어로 공부한 제가 ‘다비(多肥)하면 도복(倒伏)한다’〈(벼가) 비료를 많이 주면 잘 쓰러진다〉는 식의 난해한 표현을 많이 썼던 것이죠.
농민의 질책에 깨달은 바가 많았던 성 박사는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우리말에 관한 책을 읽었고 국립국어원에서 교육까지 받았다. 그렇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2003년 9월부터 ‘우리말 편지’라는 형식의 이메일을 보냈다. 처음엔 사무실 동료들에게만 보냈던 것이 점점 입소문을 타고 독자들이 불어났다. 지난해 말엔 그동안 보낸 편지를 묶어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 1, 2’란 책을 냈으며 인세로 받은 600만원은 모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그가 편지를 쓰는 시간은 대개 오전 8시 20분부터 40분까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화장실과 침대 머리맡에서도 우리말 관련 책들을 읽는다. “이번에’우리 말글 지킴이’로 위촉된다니 기쁘면서 부담도 커요. 앞으로는 하루쯤 편지를 빼먹지도 못할 것 아닙니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