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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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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세상>지구촌 우리말 전도사 김중섭 교수

※이 기사는 국내 유일 민영 뉴스통신사인 뉴시스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51호(10월 8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정말 바쁜 사람이다.

전화 통화만 간신히 이어질 뿐, 짬을 내 만날 시간을 두 달째 잡지 못했다. 핸드폰이 안 돼 학교로 전화를 하면 외국 출장 중이라는 답에 마음 허전해지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본인도 “내가 교수인지 비즈니스맨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월급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세계 각국을 돌며 우리말, 한국어를 전도하는 교수가 있다. 김중섭 경희대 국제교육원장(49‧국문과 교수)이 그 사람이다.

김 교수는 전공이 ‘한국어 교육’이다. 조금은 낯설게 들릴 수 있는 이 전공은 풀어서 설명하면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이다. 즉 한국어가 외국어인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교수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현재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3만 명을 넘어섰다.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교육인적자원부도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를 2010년까지 5만 명 선으로 확대하겠다는 ‘외국인 유학생 유치 확대를 위한 종합방안’인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를 지난 2004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어 교육학은 오늘의 눈으로 보면 당연히 필요한, 아니 절실한 학문이다. 하지만 김 교수가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던 1993년 7월 그의 교단 앞에는 단 2명의 영국인 학생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국문학을 전공한 김 교수가 외국인에 대한 한국어 교육에 눈을 돌린 것은 대학원 시절 경희대 국제교류위원회에서 조교 생활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외국 손님들을 수없이 맞고 보내며 ‘왜 우리 한국인들은 외국어를 배우려고만 하고 정작 우리말과 글을 외국인에게 가르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88올림픽 이후부터 늘기 시작해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중국과 일본‧동남아에서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은 2000년대 중반 들어 ‘한국어 붐’이라고 할 만큼 많은 외국인 학생들로 하여금 한국어 교재를 손에 들게 했다.

지난 16일 전 세계 23개 나라 72개 지역에서 동시에 실시된 한국어 능력시험(TOPIK)에는 모두 8만여 명이 응시해 지난해보다 2배 반 넘게 늘었다. 특히 베이징 등 15개 지역에서 시험이 치러진 중국의 경우 모두 4만 8000여 명이 원서를 접수해 지난 4월 시험 때보다 7배나 증가했다. 무연고 해외동포들을 위한 방문 취업제가 실시된 뒤 첫 번째 한국어 능력시험이라는 점도 있지만 증가세는 놀라울 정도이다.

이 같은 한국어 열풍의 중심에는 김중섭 교수의 발로 뛰는 노력이 있다.

현재 경희대 국제교육원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은 연간 4000여 명이 넘는다. 수용능력 때문에 많은 학생들의 입학을 ‘좋은 말로 거절하는’ 형편이다.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영국인 미녀 에바 포피엘도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 한국어를 익혔다.

이런 쏠림은 단순히 한류 열풍이나 한국어의 높아진 위상만으론 설명이 힘들다.

김 교수는 독특한 노하우로 외국 학생들에게 효율적인 한국어 교육을 시킨다.

그 중 하나가 ‘한국어 도우미제도’이다. 경희대 학생들과 외국인 유학생을 한 조로 만들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도록 하는 제도이다. 또 올해로 10번째 치른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 역시 경희대 국제교육원의 특화된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덕분에 경희대 국제교육원은 국내 대학 한국어교육기관 중에서 가장 외국인 학생들이 많은 대학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월급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인사에 유리한 것도 아니다. 격무에 파김치가 되어가는 후배 교수들이나 교직원들을 보면 안쓰럽다 못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김 교수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이”와 “한 나라라도 더 많이”라고 외쳐댄다.

워낙 불같은 성격이어서 후배 교수들은 불평 한 마디 못하고 함께 “돌격 앞으로”이다. 그러고 보니 김 교수는 학군 장교 출신이고 부친은 예비역 중장이다.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김 교수의 못 말리는 고집의 밑바탕엔 한글과 한국어를 세계화해야 한다는 신념이 자리한다.

김 교수는 한류 열풍이 반갑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한글과 한국어의 세계화 노력이 빠졌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드라마 ‘겨울연가’이든 영화 ‘밀양’이든 우리 문화의 핵심은 우리의 말과 글에 있다. 모처럼의 ‘한류 열풍’을 한국어의 세계화 계기로 활용하고, 나아가 지구촌에 당당한 일류 언어와 문자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에겐 그런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우리말과 글이 곧 우리 한국인의 삶이고 얼”이라고 말한다. “말과 글이 세계에 가장 한국을 올바르게 알리고 이해시킬 수 있는 소중한 수단이며 명실 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이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통해 영어를 세계에 알렸듯이 우리말과 글도 ‘한류’를 타고 세계화의 바다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화나 노래 등 대중문화에만 의지하면 모처럼의 ‘한류’는 그저 ‘일회성 바람’에 그칠 수도 있으니 우리말과 글을 전략적 문화 상품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같은 노력의 하나로 지난 2004년 자신과 동료 조현용‧이정희 교수 등과 함께 만든 한국어 교재를 중국에 처음으로 수출했다.

경희대 출판국에서 펴낸 이 ‘한국어 초·중·고급’ 총 6권은 중국에 대해 한국어 교육 부문의 저작권 첫 수출이었다. 진출 첫 해에만 3만 권이 넘게 팔린 이 책은 한국어를 배우는 다양한 중국 학생들에게 ‘필수 교재’로 자리 잡았고 한국어학과를 개설하고 있는 중국의 대학들 대부분이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경희대 국제교육원의 한국어 학습 교재는 정평이 나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을 맡았던 아드보카트·베어벡 감독 모두 김 교수가 제공한 ‘영어로 배우는 한국어’ 교재를 통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실력을 키웠다. 덕분에 그라운드에서 선수 이름을 부르면 박지성과 박주영 등 2∼3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곤 하던 아드보카트 감독의 발음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재미·재일교포 3·4세에게 모국어를 가르쳐주는 교재 편찬도 준비하고 있는 김 교수는 해외의 한국어학교를 대상으로 한 ‘인터넷 한국어교사 학교’도 운영했다. 인터넷을 통해 해당 학교의 교사들에게 한국어 교육 방법론, 한국어 교재 교육론, 한국어 평가 방법론 등 8개 과목을 강의하는 것.

이 프로그램은 재외 한국어 교사들에게 인터넷으로 교육을 실시해 교사들의 자질향상과 한글의 세계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재외동포나 외국인 학생들의 한국어 향상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어 교사들을 위한 온라인 강의와 각종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온라인 한국어교사 학교(knc.studypia.com)도 미래넷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한국 문화를 올바르게 알리기 위한 노력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주한 외국대사관 직원 가족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는 프로그램도 이어오고 있다. 강의실에선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고 이천에 가서 도자기도 굽고 민속촌에서 제기도 차는 프로그램으로 주한 외교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매년 여름방학엔 뉴욕 뿌리재단과 함께 재미동포 2‧3세를 한국에 초청, 모국어 연수 및 문화 교육을 해오고 있기도 하다.

김 교수는 방금 일본 후쿠오카에서 돌아왔다. 유학박람회에서 한국 유학을 홍보하고 상담하고 온 길이다. ‘한국어 교육’에 대한 짐은 혼자 다 짊어진 듯한 고뇌 가득한 표정이다. 몇 번씩 약속이 끊기는 상대를 인터뷰한다는 것은 기자로선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김 교수는 기자의 고교와 대학 1년 후배이기도 하다. 기사 쓰는 게 속이 상한다. 하지만 꼭 써줄만한 사람이다.

2007/10/03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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