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 다가오면 유독 바빠지는 연예인이 있다. 이제는 '개그맨'이라 부르기에 다소 어색한 정재환(46)이다.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수년째 한글 사랑 전도사로 활약하며 '우리말 지킴이'의 대명사가 됐다.
한글날을 앞두고 8일 그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주말을 아주 바쁘게 보냈다. 서울 인사동에서 한글문화연대 주최의 '한글 옷 패션쇼'를 열었고, 9일 오전 10시35분 방송될 KBS 1TV 한글날 특집프로그램 '정재환의 '겨란'은 싫어요'를 녹화했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에 관해 방송에서 이야기할 시간이 제게 주어져 기뻤어요. 정확한 우리말 사용과 아름다운 문자환경을 주제로 녹화를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자환경이 얼마나 편안하고 아름답고, 무엇보다 '우리다운가'에 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재환은 이날 인터뷰에 앞서 일본어 학원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한글 지킴이'가 웬 일본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학업에 필요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현재 성균관대 일반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국문학과 출신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학부 때부터 사학과였다. 지난해에는 '이승만 정권 시기 한글 간소화 파동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학을 전공하는 그에게 일본어는 필요불가결한 '도구'인 것이다.
이렇듯 학업과 함께 방송(EBS '코리아코리아', KTV '정재환의 아하 그렇군요' 등) 활동을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그의 한글 사랑은 쉴 새가 없다. 그는 3주 전부터는 정부가 동사무소를 '동주민센터'로 개칭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백만인 서명운동을 대학로에서 전개하고 있다.
"동사무소는 정부의 가장 작은 단위인데 여기서부터 외래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정부답지 않은 외래어 남용인 거죠."
그는 이 같은 생활 속 '외래어 남용'의 또다른 예로 외국어가 적힌 옷을 별 생각 없이 입는 행태를 꼬집었다.
"과거 많은 젊은이들이 'UCLA'라고 적힌 셔츠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이 미국 UCLA를 다녔거나 한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옷을 입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우리 글이 적힌 옷을 우선적으로 입자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한글 옷 패션쇼'도 열었구요."
한글날을 앞두고 방송 언어의 오염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개선의 움직임은 찾을 수 없다. 오늘도 시청자들은 예능프로그램의 잘못된 자막을 읽으며 즐거워한다.
"방송을 봐도, 방송 언어 순화에 관한 자료집을 봐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잘못된 언어 사용은 변한 게 없어요. 과거보다 요즘 '부스러기 영어'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요. '너무'라는 부사가 부정적인 의미인데 왜 '너무 좋다'고 하냐고 지적을 해도 듣고 맙니다.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선의 노력이 없어요. 한글의 오염은 쓰는 우리들의 자세의 문제에 있습니다."
정재환은 "그런 점에서 앞으로는 뭐가 '맞다, 틀리다'보다 '한국어를 이렇게 사용하는 게 좋다'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는 크고, 한글은 보일락말락하게 아주 작다. 저 구석에 처박혀 있다. 한글이 자랑스럽다면서도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적으로 지상파TV 3사의 한글날 특집 프로그램이 KBS1 TV '정재환의 '겨란'은 싫어요' 외에는 없다. 이는 한글날이 공휴일이 아닌 탓도 크다.
"한글날이 5대 국경일 중 유일하게 휴일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다시 공휴일로 지정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자라나는 아이들이 한글의 고마움을 더 느끼고 그 의미를 되새기지 않겠어요? 공휴일이 공휴일인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