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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만물상] 외솔 최현배

1960년대 후반 만년의 외솔 최현배는 '패티 김 쇼'를 즐겨 봤다. 외솔은 어느날 이 TV 쇼에서 패티김과 길옥윤이 마땅한 호칭을 못 찾고 서로 이름을 부르며 어물쩍 넘기는 것을 눈여겨봤다. 그는 패티김에게 편지를 보내 남편은 아내를 '단미'로, 아내는 남편을 '그린비'로 부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사랑스럽고 달콤한 여자' '그리운 선비'라는 뜻이었다. 이 편지가 알려지면서 두 호칭이 한동안 연인과 부부들 사이에 유행했다.

▶외솔은 1932년 어느 음식점 방명록에 '한글이 목숨'이라는 휘호를 남겼다. 외솔의 삶을 이보다 적확하게 압축한 말도 없다. 1910년부터 한성고보 다니는 4년 동안 스승 주시경의 조선어강습원에서 한글과 말본을 배운 이래 우리말글은 그의 우주요 종교였다. 그는 18세 때 벌써 소학교 '국어독본'을 꾸몄다. 댓가지 끝에 헌 철필촉을 꽂아 공책을 묶고 논어·맹자·대학의 금언들을 우리말로 옮겨 썼다.

▶외솔은 나라가 일본에 병합되자 죄인을 자처하며 머리를 깎고 해방되는 날까지 기르지 않았다. 1926년 연희전문에 몸담은 뒤론 총독부 지침을 어기고 조선어를 매주 두 시간씩 강의했다. 연희전문 입시만 유일하게 조선어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문법체계를 집대성한 '우리말본'을 10년에 걸쳐 쓰면서는 출근하는 아침마다 부인에게 "불이 나면 이 원고부터 옮기라"고 일렀다. 나중엔 마당에 독을 묻어 원고를 넣고 다녔다.

▶외솔은 1938년 반일 교수로 체포돼 해직된 뒤 한글 역사와 이론을 정리한 '한글갈'을 펴냈다. '갈 학(學) 자'에서 따온 '갈'은 '학'이나 '론(論)'을 뜻한다. 1941년 복직한 이듬해엔 일제가 우리말글의 숨을 끊어놓으려고 꾸민 조선어학회사건으로 문초를 겪고 해방되는 날까지 옥살이를 했다. 그 옥중 연구의 산물이 한글을 세로쓰기의 고정관념에서 해방시킨 '가로쓰기 독본'이다.

▶외솔은 한글학회 이사장으로 18년째 일하던 1970년 떠나가기까지 평생 우리말 체계를 곧게 세운 학자로, 말글운동의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민족 부흥을 외친 교육자로 살았다. 호 '외솔'의 뿌리는 성삼문의 충절 시조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독야청청하리라'에 닿아 있다. 외솔의 그 곧은 기개와 체취가 밴 생가가 지난주 울산 중구 동동에 복원됐다. 울산시가 기념물로 지정해 복원을 추진한 지 7년 만이다. 마침 한글학회가 창립 100돌을 맞은 때라 더욱 뜻깊다.

2008/09/0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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