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이하며 분단의 아픔 속에서 잊혀졌던 한글학자 이극로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특히 그가 독일에서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며 발간했던 저서가 최근 발견되면서 한글학계 및 역사학계의 관심도 높아진 상태. 현 국어사전의 시초가 된 ‘조선말 큰 사전’ 편찬을 주도하고 해외에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데 노력했던, 하지만 월북학자란 ‘주홍글씨’ 속에 잊혀져 갔던 이극로. 사상문제로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기엔 그가 한국사에 남긴 족적이 너무나 크다.
이극로기념사업회를 추진 중인 박용규(46?선린인터넷고 교사) 씨는 9일 “이극로 선생의 행적을 연구한 끝에 그가 독일에서 발간한 저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한 조선의 독립투쟁(1927)’이 최근 발견됐다”며 “조선의 독립을 이루고 일제의 만행을 해외에 알리려 했다는 선생의 행적을 보여주는 증거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극로 관련 논문을 준비 중이며 지난 2005년 ‘이극로 평전’을 출간하기도 한 박씨는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한글수호운동에서 이극로 선생의 활동은 주도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이극로(1893?1978)는 ‘잊혀진 한글학자’다. 경남 의령 출신으로 1927년 독일 베를린대를 졸업한 후 귀국해 한글운동에 앞장섰고 8?15 광복 후에는 조선어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 국어사전의 기원이 되는 ‘조선말 큰 사전’을 편찬할 때에는 관련 기금 모금을 담당하는 등 핵심적인 인물로 활약했다. 하지만 1948년 월북, 학계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이후 역사 속에서 잊혀진 인물이 됐다.
박씨가 최근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이극로 생가 복원 문제’다. 지난 8월 10일 포털사이트 다음에서도 ‘이극로 생가를 복원해주세요’란 청원 글이 올라와 잠시 화제가 된 바 있다.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에 위치한 이극로 생가는 현재 조카인 이필세 씨가 지키고 있다.
박씨는 “오랜 기간 보수를 받지 못해 건물 곳곳에서 붕괴 위험이 있는 실정’이라며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인물의 생가가 이렇게 방치돼 있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홍명희 선생 역시 사상 문제를 떠나 이젠 역사적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며 “낡은 사상문제에 갇혀 한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을 이대로 지워버린다는 것은 후세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