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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가람 이병기



문화관광부는 시조 시인이며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李秉岐ㆍ1891~1968) 선생을 `6월의 문화 인물`로 선정했다. 이병기 선생은 이론과 창작으로 시조(時調)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 민족 문학으로 다시 일으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며, 국문학의 디딤돌을 놓았다. 올곧고 향기로운 그의 삶을 살펴 본다.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주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 되어 마디마다 달렸다.

시조 `난초`의 시인 이병기는 1891년 3월 5일,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번지에서 태어났다.

가정에서 한문을 공부하던 가람(이병기의 호)은 16 세에 결혼했다.

어느 날, 가람은 청나라의 사상가 량치챠오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을 읽었다.

그는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던 이 책의 내용 가운데 `20세기는 서양ㆍ동양 문화의 결혼 시대이다.`라는 내용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이후 가람은 `개화 사상`을 받아들이고, `신학문`의 길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곧바로 전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 뒤 보통학교를 졸업한 것은 스무 살을 앞둔 1910년이었다.

가람은 고향을 떠나 서울의 관립 한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그 얼마 뒤 부끄럽게도 `한일합방조약`이 맺어지고, 나라를 잃었다. 가람은 전통 문화를 지키는 것이 바로 나라의 뿌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1911년 9월, 가람은 `조선어 강습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주 일요일 강의(2 시간)를 주시경 선생이 맡는다는 것이었다. 가람은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학문을 하려면, 한문에서 벗어나 우리의 말ㆍ글부터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강습원에 입학한 가람은 중등ㆍ고등과 과정을 마치게 된다. 이어서 한글 운동에 뛰어들어 주시경 선생을 도왔다.

한성사범학교를 마친 다음, 전주의 남양보통학교 `훈도`(교원)로 발령을 받는다.

1919년 3월 `조선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지자, 훈도를 그만 두고 서울로 올라갔다.

28 세 때의 일이다.

미국이나 중국으로 망명 길을 찾으려던 중에 일본 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나흘 만에 풀려 났다.

그 후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게 된다. 이 연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 다시 1949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까지 국어 연구의 대표적 학회로 자리를 지켜 온다.

1922년부터 보성고보ㆍ휘문고보 등에서 조선어ㆍ한문 교사로 학생을 가르쳤다. 이 무렵 가람은 본격적으로 시조를 창작하며, 아울러 고전(古典)연구에도 힘을 쏟는다.

그의 첫 시조집 `가람 시조집`(1939년)은 오늘날 시조의 고전이 되어 있다. 자연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현대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이 작품들을 시인 정지용은 일찍이 이렇게 평가했다.

"시조 창작의 양과 질로 가람의 오른편에 앉을 이가 아직 없다.. 송강 이후 으뜸인 그가 근대적 시 정신으로써 시조를 재건한 데 감격하여 진심으로 존경한다."

가람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1 년 가까이 옥살이를 겪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다음 해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고향에서 8ㆍ15 광복을 맞이한다.

가람은 일제의 협박에도 성과 이름을 바꾸지 않고 `이병기`를 지켰다.

특히 일제 시대 문인ㆍ학자들의 행적을 들추어 `친일문학론`을 쓴 임종국은 가람을 `단 한 편의 친일 문장도 남긴 일이 없는 영광된 작가`라고 하였다.

그는 해방 후 서울대학교ㆍ전북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역임하면서 시조와 고전을 연구해 큰 공적을 남겼다. 1968년 77 세로 세상을 떠났다.

2001/06/05 소년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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