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2월22일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56세로 작고했다. 소쉬르는 현대언어학의 산모라고 할 만한 사람이다.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언어학의 역사도 고대 그리스나 인도에까지 끌어올리자면 그러지 못할 것은 없지만, 그럴 경우에도 소쉬르라는 이름은 더없이 우뚝하다.
이 제네바 사람을 통해서야 언어학은 좁은 의미의 모더니티를 획득하고 20세기 후반에 구조주의라는 사다리를 통해 학문의 왕좌에 오를 발판을 얻었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사후에 그 제자인 샤를 발리와 알베르 세슈에가 편집한 `일반언어학강의`(1916)는 그 때까지의 언어학을 지배했던 낭만주의ㆍ역사주의ㆍ실증주의를 전복시키고 구조주의의 씨앗을 뿌렸다.
언어는 구체적 단위들의 대립(차이)을 기반으로 하는 가치들의 체계(소쉬르 후계자들의 용어로는 `구조`)라는 생각은 그 때까지의 언어관에 대한 혁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연구 신화학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등 20세기의 여러 인문사회과학이 새로운 방법적 틀을 빌려오는 원천이 되었다.
랑그/파롤, 시니피앙/시니피에, 형식/실체, 연합관계/통합관계/, 공시/통시 등 과학적언어학의 방법론적 기점이 된 대립쌍들의 개념이 확립된 것도 `일반언어학강의`에서였다.
언어학사 책에서 소쉬르가 차지하고 있는 만큼의 페이지를 할애받을 수 있는 언어학자는 아직 없다.
흔히 구조주의와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지되 크게 가르면 구조주의 언어학의 한 분파로도 볼 여지가 있는 생성문법의 창시자 노엄 촘스키같은 이가혹시 뒷날 소쉬르만큼의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확실치는 않다.
소쉬르의 이론은 한 세기의 풍화작용을 이겨내며 활짝 피어났지만,촘스키의 이론은 그 화려한 역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형성 중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