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파타야 방면으로 자동차를 타고 1시간 30여분 달리면 물소경주로 유명한 촌부리의 부르파 대학이 나온다.지난 1999년 한국어 부전공,2000년 한국어과를 개설한 이 대학은 지난해 8월 태국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어 센터’를 설립했다.
어느덧 태국에 불고 있는 한국어 열풍의 중심지가 된 이 센터가 탄생한 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밤잠 설치며 뛰어다닌 당찬 20대 한국 여성의 땀이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총재 민형기) 해외봉사단원으로 99년 부르파 대학에 파견돼 2년여동안 현지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서은경씨(28)는 그해 여름 해외봉사단 지원서를 쓰기 전까지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97년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회사에 ‘멀쩡하게’ 잘 다니던 서씨가 해외자원봉사를 결심한 계기는 엉뚱하게도 ‘행복해지고 싶어서’.
“IMF 구제금융의 여파가 한창일 때 대학을 졸업하고 무난하게 직장을 갖게 됐지만 즐겁지가 않았어요.문득 받기만 하는 삶 보다는 베푸는 삶이 더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들어 무작정 지원서를 제출했죠”
부모님의 만류와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고 머나먼 이국 땅에 짐을 풀었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자신과 자신이 개설한 한국어 강의에 현지인들이 보이는 냉담한 반응이 이국에서의 생활을 어렵게 했다.
하지만 특유의 부지런함과 친화력으로 파고 들었다.특히 단순히 말·글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까지 이해시킨다면 이들이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상당한 친숙감을 가질 것이란 서씨의 생각은 적중했다.
‘제자’들을 주축으로 만든 노래반, 사물놀이패, 전통무용반은 어설픈 장단이나마 북·장고·꽹과리를 치고 우리 춤사위를 흉내내는 학생들에게 먼나라 한국,보신관광이나 즐기는 한국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차츰 바꿔놓았다.또한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과 현지인들의 행사에 자주 초청돼 공연을 펼치면서 학생들에게 자부심도 심어줬다.
그리고 서씨의 쉴 새 없는 활동은 어학실, 도서관, 민속 자료관 등을 갖춘 한국어 센터 설립으로 결실을 맺었다.부족한 도서는 국내 대학에 요청하고, 각종 자료는 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을 받으며 어렵사리 문을 열던 날 서씨는 학생들과 부둥켜 안고 울었다.
“태국에 머무르는 동안 태국인들의 뇌리에 새겨진 어글리 코리언(ugly-korean)의 이미지를 없애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죠. 그래서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자꾸 일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어 센터 설립을 끝으로 귀국한 서씨는 그때의 인연으로 지난해 8월 태국 관광청 서울사무소에서 취직해 태국과 우리나라를 잇는 ‘민간 외교관’의 일을 하고 있다.
기회만 되면 다시 해외봉사를 나가고 싶다는 서씨는 “봉사는 일방적 희생이 아니라 쌍방향의 사랑을 배우는 겁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