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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른 이 177095234 명
깁고 더함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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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잊지 않으려 신문 만드는 전혜란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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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라, 슬기로워라, 미더워라, 아름다워라의 첫글자이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 이름이기도 합니다”
가족신문 ‘예슬미아’ 편집장 전혜란씨(42)는 “예슬 슬미 미아 세 딸의 이름을 합쳐 가족신문 제호를 삼았다”고 말한다.
맏이 예슬(15·포트 리치몬드 컬리지에이트 10)이가 여섯살 때인 1993년 5월 라디오에서 가족신문 얘기를 듣고는 엄마를 졸라 만들게 됐다. 창간호는 광주에서 냈는데, 아빠 안병환씨(45·건초무역업)가 회사에서 가져온 A3 이면지 2페이지에 사인펜과 색연필로 기사를 써넣고 사진을 오려붙여 만들었다. 누렇게 빛바랜 창간호는 지금 이 집의 보물 1호다.
예슬이네가 96년 이사하게 돼 7호부터는 서울에서 발행했고, 98년 온가족이 캐나다로 이민가 29호부터는 위니펙에서 내고 있다.
전씨는 “예슬미아는 여느 가족신문처럼 가족들의 역사 기록이라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이민 온 다음부터는 아이들 한글 교육하는 데 큰 힘이 돼주고 있다”고 말한다.
교포들의 경우 가족끼리 우리말을 써 말은 할줄 알아도 한글은 잊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슬,슬미(12·아카디아 주니어 하이스쿨 7),미아(9·달하우지스쿨 4)는 가족신문의 ‘민완 여기자’로 기사를 쓰다보니 고국의 또래보다 오히려 글을 잘쓴다.
미아는 “두언니와 함께 고정란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한다. 예슬이는 ‘제제의 목소리’,슬미는 ‘또또의 목소리’,미아는 ‘다다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고정 칼럼을 쓰고 있으니 칼럼니스트인 셈이다.
호기심이 많아 동네와 학교에서 곧잘 뉴스거리를 찾아내 특종(?)을 하는 슬미는 “요즘은 편집회의를 따로 하지 않아도 기사 아이템이 주루룩 떠오르지만 그래도 격식을 갖추기 위해 편집회의를 꼭 하고,기록도 한다”고 들려준다.
커버스토리와 표지사진을 먼저 정하고 그 호의 다른 기사 꼭지들과 담당기자를 정해서 마감일을 알리는 것으로 편집회의는 끝. 8월15일 펴낸 49호의 커버스토리는 둘째 슬미의 달하우지스쿨 졸업식이었다.
기사가 모이면 전씨가 편집을 하고 한글 교정은 안씨가, 영어 교정은 예슬이가 맡는다. A4용지 14매 정도로 우선 종이신문을 만들어 가족과 가까운 친구 몇몇에게 메일로 보내고, 종이 신문을 편집해 홈페이지(ysmianews.netian.com)에 올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고 있는 셈이다.
전씨는 “마감일을 지키지 않는 기자(?)들이 있어 힘든다”며 최소한 격월로 발행하려고 하지만 제대로 실행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한다. 특히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가족들이 바쁠 때는 신문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예슬이는 “편집회의 하고 기사 쓸 때는 귀찮기도 하지만 해놓고 나면 아무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슬미는 “캐나다 친구들에게 가족신문 얘기를 했더니 영문판도 만들어 보여달라고 할 정도로 인기 짱”이라고 자랑한다.미아도 질세라 “학교 선생님이 매우 좋은 신문이라고 칭찬해주셨다”고 보탠다.
예슬미아의 독자들은 지구촌 곳곳에 있다. 캐나다에는 물론, 영국 런던, 인도 캘거리, 미국 플로리다 필라델피아, 뉴질랜드 웰링턴 등 세계 곳곳에 있다. 물론 한국에 제일 많다.
안씨는 “먼 훗날 아이들이 각자 흩어져 이국에서 살게 되더라도 가족신문철이 자신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고,가족에 대한 강한 동질감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딸들이 장성해 부모 품을 떠나 새 가정을 이룰 때 가족신문을 CD로 만들어 선물할 계획이란다.
편집장 전씨의 꿈은 더욱 야무지다.“나중에 결혼을 하면 아이들 가정마다 섹션을 만들어 섹션신문으로 발행할까 합니다”
2002/10/14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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