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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국어학자 이윤재

기자는 옷깃을 여미고 삼가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1943년 12월8일 국어학자 이윤재가 함흥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향년 56세. 이윤재의 호는 환산(桓山) 또는 한뫼다.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환산은 대구 계성 학교에서 공부하고 평북 영변의 숭덕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에 3ㆍ1운동에 가담해 3년 가까이 복역했다. 출옥 뒤에 중국 베이징 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고 24년에 귀국해 여러 중등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조선어 학회의 기관지인 "한글"을 창간해서 그 편집을 주관했고, 진단학회에도 가입해 국사 연구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37년에는 흥사단 계열의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이듬해 11월까지 옥살이를 했고, 그 뒤 연희 전문학교 교수로 일했다. 환산의 공부는 본디 사학으로 출발했지만 그의 주된 활동은 국어학과 국어 운동 쪽에 있었다. 그는 조선어학회의 동료 국어학자들과 한글 맞춤법을 제정하고 표준어를 사정하고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는 등 국어와 한글 보급을 통한 민족운동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 국어 운동의 대가(代價)는 혹독했다. 그는 42년 10월1일 세칭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돼 함흥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그 이듬해 겨울 돌아갔다. 조선어학회 사건이란 일제가 조선학 연구의 탄압책으로 조선어학회에 "학술 단체를 가장하여 국체(國體) 변혁을 도모한 독립운동단체"라는 혐의를 씌워 회원들을 치안유지법 상의 내란죄로 기소한 사건이다. 이윤재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한징 정인승 등 33명이 기소됐는데, 이들 모두 심한 고문을 당했고 이윤재와 한징 두 회원이 옥사했다. 환산의 제자이자 사위인 김병제는 장인이 33년부터 모아놓은 미완의 사전 원고를 수정ㆍ증보해 해방 뒤인 47년에 "표준 조선말 사전"을 펴낸 바 있다.

2000/12/07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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