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사랑하는 외국인.’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대학(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러쓰 킹(Ross King) 교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80년 예일대 2학년때 우연히 접한 한국어를 23년째 전문적으로 연구하면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 한국어 보급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미국 중서부 미네소타주에 있는 콘코디아 언어마을(Concordia Laguage Village)의 한국어 마을인 ‘숲 속의 호수’ 활동은 한국어 교육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킹 교수는 1999년 ‘숲 속의 호수’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학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예정으로 고려대 연구교수로 국내에 머물고 있는 킹 교수를 지난 13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킹 교수의 한국어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하나의 언어가 아니다. 국제어로서의 한국어를 얘기한다. 그는 “외국인들은 갈수록 한국어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데 비해 한국사람은 국제어로서의 한국말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는 것 같다”며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어의 국제화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어를 어떻게 해서 배우게 됐나.
=대학 2학년때 언어학 전공 강의중에 ‘언어학 현지조사 방법론’이라는 게 있었다. 이때 한국어를 처음으로 접하면서 공부하게 됐다. 또 어릴 때 콘코디아 언어마을의 러시아촌을 5년간 다녔는데 그때 촌장 선생님이 ‘러시아어가 어렵다고 하는데 한국말을 한번 배워보면 진짜 어려운 말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이 늘 기억이 나서 도대체 한국말이 어떨까하고 늘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말을 배우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83년부터 주로 독학으로 한국말 배웠다. 한국어 교재가 있었으나 여러가지로 미흡했다. 존대법이나 한자, 의성 의태어, 수많은 어미변화가 어려워 힘들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 힘든 점은 환경적인 면도 있다. 즉, 한국사람들이 외국인을 만나면 한국말보다는 영어를 자꾸 쓰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86년 한국에 와서 말 배울 때 나는 수영장 안전관리원 등 평범한 서민들과 주로 지냈다.
-한국말을 배우려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다는데.
=그렇다. 미국에서는 지금 동아시아어에 대한 붐이 일고 있다. 일본어나 중국어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어를 배우려는 순수 외국인 학생수도 갈수록 늘고 있다. 브리티시 콜럼비아대학의 경우 처음에는 한국어 수강생이 20~3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90명에 이른다. 물론 이중 한국동포가 80%를 차지하지만, 외국인의 숫자가 높아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숲 속의 호수’는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곳으로 아는데 어떤 곳인지 상세하게 설명을 해달라.
=숲 속의 호수는 콘코디아 언어마을에 있는 한국어촌 이름이다. 콘코디아 언어마을은 1961년 콘코디아 대학의 독일어과 교수의 제안으로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전문교육기관이다. 이 곳은 주로 여름에 유치원생부터 고3학생들까지 학생들을 받아 각 언어를 가르치는데 공동체 활동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외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한다. 하루 종일 해당언어를 쓰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옷을 기름통에 한 이틀 담갔다가 꺼내면 기름냄새가 온통 배듯이 언어습득에도 이런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매년 미국 각지와 세계 각국에서 약 9000명의 학생들이 참가한다. 한국어촌은 콘코디아에서 12번째로 가장 늦게 출범했지만 참석자 수로는 8번째에 속한다. 선생들은 나만 빼고 모두 한국인들이다.
-다른 한글학교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곳에 입촌하면 하루종일 한국말만 듣고 한국말만 한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 등 다른 한국어 교육기관은 시간이나 환경의 제약으로 인해 짬짜미하는 공부밖에 안된다. 이곳을 거쳐간 학생들 얘기가 ‘8년간 미네아폴리스의 한글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이 곳에서 생활한 2주동안 한국어를 더 많이 배웠다’는 얘기를 한다.
-배우러 오는 학생들은 주로 누군가.
=지난해 숲 속의 호수에서 91명이 한국어를 배웠다. 이중 60%는 입양아이고 나머지 40%는 다양하다. 재미동포 2세는 단 1명이었다. 의외로 한국계가 아닌 외국인이 많다. 한국사람들은 이처럼 한국어가 매력적이라는 데 대해 개념이 없다. 이제 한국어는 국제무대에서 배울만한 국제어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말로는 한국어의 세계화를 얘기하면서 이런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모르고 있다.
-한국어가 국제어가 될 수 있다는 데 대해 많은 한국인들이 과연 그럴까하고 의아심을 갖는 게 사실이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든지 오래됐다. 왜 국제어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 배우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어린이들에게 투자하면 된다. 한국어 교육을 이제는 동포들의 정체성 회복 차원에서 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더이상 민족어로서의 한국어가 아니다. 민족주의 생각을 버리고 관심있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재미있게 가르치면 이들은 자연히 ‘친한’파가 된다.
-‘숲 속의 호수’를 운영하면서 어려움도 적지 않을텐데.
=숲 속의 호수는 전국적 규모의 학교다. 지난해에는 미국내 15개주에서 학생들이 왔다. 한국어촌은 아직 우리 자체적인 집이 없어 여름에만 문을 연다. 프랑스나 스페인 노르웨이 핀란드는 자기집이 있어 1년 내내 캠프가 가능하다. 우리도 기와집으로 독자적인 시설을 갖추려고 하는데 80억원 정도의 예산이 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부나 재단의 지원이 절실하다. 독일 등 다른 나라들은 정부차원에서 엄청나게 지원해줬는데 한국정부는 외국대학에 대한 지원은 하는데 이곳에 대해서는 아직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앞으로 개인적인 계획은
=문학 번역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한국말을 배운지가 22년이 됐는데 이제 문학작품을 번역할 만큼 실력이 된 것 같다. 지금껏 이뤄진 한국문학의 영어번역을 보면 엉터리가 많았다. 이를 바로잡아 수준높은 한국문학을 외국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
-염두에 두고 있는 작가나 작품이 있나.
=조성기씨 작품이 좋다. 내용이 굉장히 재미있는 데다가 칠팔십년대 한국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작품들이다. 미국작가들에게 잘 읽힐 것이다. 고전문학 가운데는 변강쇠전이 너무 재미있다. 위 두가지를 찜해두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학에서 한국문학 전문번역가를 양성하는 일도 내가 할 일인 것 같다.
-외국어 전문가로서 외국어 배우기에 대한 생각은
=21세기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구촌 구성원이라면 적어도 한개의 외국어는 잘해야 한다. 특히 이것은 미국에서 필요하다. 외국어를 배우면 열린 사고를 지니게 된다. 열린 사람들이 많았다면 9.11테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외국어를 잘할 수 있나. 외국어 습득의 노하우를 공개한다면.
=어렸을때 그리고 대학졸업전에 외국어를 배워야한다. 또 일단 배우면 한동안 미친사람처럼 무자비하게 몰두해야 한다. 외국어는 어떤 것이든 저절로 습득되지 않는다. 꼭 그 말을 써야하는 상황에 자기를 갖다놓는다면 더 빨리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