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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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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어난 한글
 
한국 사람에게 한글 문자가 궁극적으로
최상의 문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의심할 바 없이
이 문자는 인류가 쌓은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의 하나로
손꼽지 않으면 안 된다.


[제프리 샘슨, 영국의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한글을 자질문자로 규정하면서 우리글을 극찬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이처럼 온 세계가 한글을 칭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을 머리에 떠올린다. 그렇다면 그 과학성과 독창성의 실체는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정인지의 훈민정음 제자해(制字解)에 따르면 훈민정음 곧 지금의 한글은 자연의 이치, 즉 천지만물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요, 억지로 지혜를 짜내고, 힘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하였다. 다시 말하여 억지로 꾸민 것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이 말의 숨은 뜻에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은 하늘이 그 솜씨를 세종에게 빌려주어 만들어 낸 하나의 기적이라고 감탄하는 마음과 훈민정음 글자의 오묘한 간결성과 체계성을 상찬하는 마음을 함께 나타내는 것 같다.
훈민정음은 그때까지의 모든 문자 이론과 그때까지 통용되던 문자들의 장단점을 모두 수렴하고 거기에 새로운 독창적 착상을 덧보탬으로써 그 당시로서는 그 이상이 없는 세계적인 수준의 문자가 되었던 것이다. 즉 그때까지 우리나라가 한자를 이용하면서 우리말을 적는 데 이용되었던 이두와 구결 문자들이 참고되었음은 물론이요, 한자의 다양한 서체와 약자들도 참고하고, 중국의 성운학의 연구 성과와 당대의 세계관과 우주론인 음양오행의 이론이 절묘하게 배합됨으로써 한글은 비로소 하나의 세계적인 문자로 탄생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한글의 특성을 한마디로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한글은 말소리와 특성을 글자꼴에 체계적으로 반영한 표기체계다."

이것을 영국 학자 샘슨은 자질문자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음절 단위로 모아쓰는 문자임을 표현하자면 `자질적 음절문자`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자질적 음절문자의 특성을 차례대로 정리해 보자.

1) 표기 단위의 소리를 음절로 삼고 하나의 음절을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누었다. 이 음절삼분법은 음절을 성모와 운모로 나누던 음절이분법의 불완전성을 근본적으로 뒤엎은 혁명이었다.

2) 초성과 중성을 구분하여 각각 별도의 문자를 만들었다. 초성은 현대 언어학이 말하는 자음이요, 중성은 모음에 해당한다. 이 세상의 어떤 문자도 모음과 자음이 체계적으로 다른 글자꼴을 가진 예가 없었다. 오직 한글만 체계적으로 다르다.

3) 종성은 초성 글자를 같이 쓰기로 하였다.

4) 초성과 중성의 기본 글자를 먼저 만들고 나머지는 기본 글자에 덧붙임꼴을 갖게 하였다. 이 부분이 한글의 간결성과 체계성을 보장하게 한다.

5) 초성의 기본 글자는 발음기관을 상형하고, 중성의 기본 글자는 천지인 삼재를 상형하였다.
한글이 음운론의 이론과 동양철학의 우주관을 반영한 음양오행의 이론을 절묘하게 결합한 것이라고 하는 말은 초성과 중성의 상형 모델을 어디에서 찾았는가에 대한 감탄의 표현이다. 이 세상의 어느 문자가 언어학과 철학을 결합시켰던가? 세종에게 있어서 언어학(성운학)과 철학(음양오행 사상)은 표리일체를 이루는 하나의 논리였다.

6) 초성(음운)은 오행사상에 맞추어 발음 위치별 소리군을 어금닛소리, 혓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목구멍소리로 정하며, 그 기본 글자는 약한 소리로 하고 나머지는 소리의 세기 정도에 따라 획을 덧붙이는 가획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ㄱ ㄴ ㅁ ㅅ ㅇ`이 기본이 되는 초성 글자이고, `ㅋ ㄷ ㅂ ㅈ ㆆ`, `ㆁ ㅌ ㅍ ㅊ ㅎ` 등은 초성 기본자에 가획을 하여 만들었다.

7) 중성(모음)은 천지인 삼재를 상징하는 원점, 수평선, 수직선 ㆍㅡㅣ를 기본자로 하고 여기에 음양오행의 원리를 적용하여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ㅘ ㅝ ㅚ ㅐ ㅔ ㅢ 등의 글자를 생산하였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ㆍ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의 11자만을 기본 중성으로 생각하였다.(ㅐ ㅔ ㅒ ㅖ ㅘ ㅝ ㅢ 등은 기본 모음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8) 완성된 글자로 표기할 때에는 초성과 중성, 또는 초성과, 중성, 종성을 상하좌우로 결합하여 네모 속에 꽉 들어찬 형태로 적기로 하였다.

이것이 곧 한글이 자모 하나 하나로는 자질문자이지만, 완성된 표기형으로는 음절문자가 됨으로써 한자와 어울려 써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이러한 음절 문자의 특성으로 한글은 가로쓰기나 세로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간결하고 체계적이어서 정인지의 찬사처럼 하나님의 솜씨를 세종대왕께 잠시 빌려준 것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문자가 곧 우리의 한글이다.

그러나 이 한글이 세계에 자랑할 인류 문화의 고귀한 유산으로 길이 보존되려면 그 글자의 표기 대상이 되는 우리말, 한국어를 끊임없이 갈고 닦아서, 우리 한국어도 자랑스러운 언어로 손꼽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글은 단지 우리말이 건전하게 살아 있을 때에만 그 말을 적는 도구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말이 없어진다면 그 말을 담는 그릇인 한글은 담을 물건이 없으니 자연히 쓸모가 없어질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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