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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른 이 155994765 명
깁고 더함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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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말에 부산 정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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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는 부산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친구`는 부산을 무대로 부산말을 쓰는 부산 영화이면서도,관객 740만명을 돌파한 국민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친구`의 흥행과 함께 부산말은 전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엄청나게 유행하기 시작했다.부산말 돌풍은 부산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지방 사람들에게,지방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서울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것은 모두 서울에 모여 있다.교육을 받기 위해서도,직장을 얻기 위해서도,물건을 사기 위해서도 서울로 가야 한다.서울로 가기 위해 서울말을 배워야 했고,고향말은 버려야 했다.부산의 방송은 모두 서울말을 사용하고 있으며,대학 축제에서 사회를 보는 학생도 마이크를 잡으면 자동적으로 `…하구요` 같은 서울말을 쓴다.영어를 너무 열심히 배우느라 우리말이 천시되듯이,서울말 때문에 부산말은 푸대접을 받는다.
말은 단지 말이 아니라 정신이다.말을 버리면 자부심을 잃게 되고,말이 존중되면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이 살아난다.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식당이나 기차 안에서 영어로 크게 떠들어 대고,서울 사람들은 부산에서 서울말로 과시한다.영어의 존재 과시 앞에서는 한국 사람이 기가 죽고,서울말 앞에서는 부산 사람이 풀이 죽는다.
말은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말에는 사람들의 이상과 희망이 녹아 있다.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그 의미에 소리의 옷을 입혀 다른 사람에게 표출한다.의사 소통을 위하여 음성으로 표출된 존재 의미의 총체가 바로 언어이다.
한국 사람은 한국의 얼이 담긴 말을 들으며 자라나서 한국의 정신을 습득한다.최근에는 노래 가사,간판,프로 구단 이름에 마구 영어를 쓰고,외국인을 위하여 영어 이름까지 새로 지어서 다닌다.이렇게 한국어를 버리면 한국의 정신도 사라져 버린다.지방말과 서울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서울말을 존중하고 고향말을 천대하면,고향의 정신이 무시된다.자기 고향을 업신여기는 뿌리 뽑힌 인간은 다른 고장 사람에게서도 존중받을 수 없다.어떤 지방에 살건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 지방의 정신이 무엇인지 찾아내어,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부산의 정신은 부산말에 숨어 있다.`친구`에서 상택의 내레이션처럼 고저 장단이 없는 투박한 단조로움은 자신의 심정을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부산 사람의 신중성이다.`마이 무따 아이가`처럼 편하게 줄여서 말하는 것은 형식과 이론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성이다.친밀한 사이에 쓰이는 거친 표현은 우정에 대한 강렬한 존중이다.
신중성은 외부 사람들에게 무뚝뚝함으로,실용성은 원칙과 절차를 소홀히 하는 조급성으로 오해받기도 하고,강렬한 우정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그러나 이 셋은 긴 세월동안 부산 사람들이 자연과 싸우며 형성한 부산의 정신이며,세계화 시대에도 여전히 통용될 수 있는 지혜이다.이질적인 문화가 국경의 장벽도 없이 밀려드는 인터넷 시대일수록 자기 문화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겉치레에 얽매이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는 신중한 자세가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부산 정신을 소중히 간직하려면 부산말을 자랑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부산의 학교에서는 국어 시간에 서울말 교육만 할 것이 아니라,부산말도 가르쳐야 하고,부산 연극제에 출품되는 연극 작품은 중심 언어가 부산말이어야 한다.언어 문제에서는 방송의 영향이 가장 크다.지방 방송에서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은 마땅히 부산말로 진행되어야 한다.`친구`에서 상택의 내레이션을 들을 때처럼,아나운서의 묵직한 부산 억양 방송을 들을 때 부산 시민은 얼마나 자신의 존재가 자랑스럽겠는가?
말이 죽으면 얼이 죽는다.얼빠진 인간은 스스로를 존중하지도,타인에게서 존중받지도 못한다.부산에서는 부산말이 공식 언어가 되어야 한다.모든 지역이 각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바로 우리가 꿈꾸어야 할 미래이다.
배학수 경성대 철학과 교수
2001/06/09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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