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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언어, 사회 현상
[이 아침에] 우포늪의 우리 이름 `소벌`

성선경 < 시인 > 내 고향의 우포늪은 이제 전 국민이 그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한 습지가 되었다.

1997년，우포늪(소벌)이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해 이제는 우포늪을 한번 다녀오지 않으면 환경문제에 둔감한 사람처럼 느껴지고，학생들에게는 우포늪 탐방이 중요한 생태학습 코스로 각광(脚光)을 받고 있다.

다가오는 2008년 환경올림픽이라는 람사총회가 경남에서 열리는 것을 계기로 우포늪은 더욱더 중요 습지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70만평의 넓은 자연습지를 만난다는 것은 보는 것 그 자체로서 이미 감동적이다.

그것이 일억년 전에 생성된 백악기의 산물이라거나 생태계의 보고라거나 하는 수식어를 다 빼고서라도 그 앞에 서면 이미 우리는 마음을 열 수밖에 없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러나 생태계의 보고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경상남도 창녕군 소재의 우포늪은 원래 이름이 소벌이었다. 소처럼 크고 넓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소벌이라는 순수한 우리 이름은 사라지고 한자말인 우포(牛浦)가 되었다. 지역민의 입말인 소벌이 사라지고 글말인 우포라는 한자말이 지금은 소벌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우포늪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게 되자 우포라는 이름을 가진 많은 단체들이 생기고 일년에 몇 번씩 문화행사들이 열린다. 그런데 어느 단체도 소벌이라는 말을 쓰는 이가 없다(간혹 괄호 속에 소벌이라는 말을 병기(倂記)하는 것은 보인다. 이는 본래 이름이 소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우포로 쓰고 있다).그래서 우포라는 한자말을 버리고 소벌이라는 우리 이름을 되찾자고 건의를 해보았으나 이미 우포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을 당사자들에게 듣고는 마음이 많이 쓸쓸해졌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걷어차는 짓이며 열매가 그 뿌리를 부정하고 가지가 그 줄기를 흔드는 꼴이다. 소벌이 우포가 되자 내 가슴 속에는 어릴 적 고향의 향기가 사라지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무슨 새로운 놀이동산이 갑자기 만들어져 들어 온 것처럼 생소하게 여겨진다. 늘 가슴에 와 닿던 자연스러움이 달아나고 그 자리에 비무장지대처럼 가까이 가서는 안 될 접근 금지지역이 된 것 같다.

1998년 람사협약에 의해 국제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습지로 지정돼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그런 것만이 아니다. 그 이름에는 이미 이름 이전의 향기와 체온이 있는 법인데 우포라는 명칭은 내게 낯설다.

우포를 지킵시다,우포를 살립시다,하는데 지키고 살려야 할 것이 풀이나 물고기만은 아닐 것이다. 그 본래의 이름 하나 지켜내지 못하면서 지키자 살리자 하는 말은 꼭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 같고 박수치는 사람이 많으니 나도 한번 박수를 받아보자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지금은 마을 이름 하나도 본래의 우리말을 되찾아 개명을 하는 시대인데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름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소벌은 현재 낙동강의 일부분이다. 낙동강과는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장마철이 되면 낙동강과 같이 수량이 불어나 늪의 수위가 높아지고 갈수기가 되면 수위가 낮아져 늪의 폭이 현저히 좁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소벌을 낙동강의 허파라고 말하기도 한다.

장마철에도 낙동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은 소벌이 그 많은 강물을 품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벌은 낙동강과 함께 존재한다.

그런데 소벌을 보존하고 지키자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벌의 물길이라고 할 수 있는 낙동강의 수질에 대해서는 둔감한 것 같다. 낙동강을 지키는 것이 늪을 지키는 일이며 늪을 지키고자 한다면 낙동강을 지켜내야 하는 데 이 둘을 따로 생각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인기가 있으면 매달리고 인기가 없으면 내치자는 것인가？ 뿌리가 죽는데 그 가지가 무사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때인데 지명 하나라도 원래의 그 뿌리를 찾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지키자 살리자는 말도 그 뿌리에서부터 하자.

2006/08/25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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