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 쳐놓고 신통한 게 없다보니 집사람으로부터 핀잔듣는 덴 꽤 이골이 났다.그래도 사람 보는 눈은 있어서 당신을 마누라로 선택한 것은 잘한 일 아니냐고,그 이상 뭐가 필요하겠느냐고 응대하면서 킥킥댈 정도로 기자도 능청스러워졌다.
이렇게 오래된 옷을 걸친 듯 집사람의 핀잔엔 익숙해진 기자이지만 그녀가 얼마 전에 던진 한마디는 그냥 웃어넘기기엔 상당히 버거웠다.당신은 글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이 왜 그렇게 다르느냐는 것이었다.글 쓰는 건 설득조인데 자신에게나 아이들에게 말하는 건 숫제 윽박지르기라는 얘기였다.상대방을 억누르려고만 하고 마음에 두고두고 상처를 남길 말들을 여과 없이 퍼붓는다는 것이었다.축복 담긴 한마디와 그렇지 않은 한마디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오는지 말해주는 간증 테이프까지 틀어주면서 말도 글처럼 차분히 생각한 뒤 차근차근 해달라는 게 집사람의 주문이었다.
이런 기자가 다른 사람의 말투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건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타박하는 꼴이 될 것이다.그렇긴 해도 요즘 정치인들이 주고받는 말들은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늘 그래 왔으니까 묵은 얘기들은 접어두고 지난 주 후반에 있었던 몇몇 정치인의 말만 짚어보기로 하자.지난 26일 민주당의 박상규 사무총장은 민주당에 걸려온 전화내용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이회창 총재가 친일 혐의를 받고 있는 아버지의 예산 생가를 복원한다는데 이는 반민족적 행위로 정계 은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밝혔다.이총재의 아버지가 친일을 했는지,또 했다면 얼마나 크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생가 복원이 반민족적 행위로까지 지탄받아야 하는지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박총장은 남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할지 모르나 여당의 지도급 인사가 남의 말이라고 다 옮기는 것도 책임있는 태도는 아닐 것이다.그런가하면 한나라당의 김만제 정책위의장은 27일 광주의 시국강연회에서 “현 정권이 낡은 사회주의 정책을 쓴 결과 경제가 엉망이 됐다”며 “DJ의 가신 중 몇몇은 목포 앞바다에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이에 앞서 “DJ의 경제정책은 정육점 아저씨가 심장수술을 한 것과 같다”는 독설을 서슴치 않았다.야당의 정책위의장이 현 정권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그러나 몇몇 가신은 목포 앞바다에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다느니 정육점 아저씨 심장수술이라니 등의 섬뜩한 용어들을 꼭 동원해야 하는지 수긍하기 힘들다.
일일이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여야가 벌이는 공방은 이미 정치적인 차원을 떠나 폭력적 차원에 접근한지 오래다.그래서 주고받는 말마다에서 살기마저 느껴진다.
우리 정치인들의 입이 왜 이렇게 거친 것일까 그건 아마도 단 한방에 상대방을 제압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그릇된 토론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상대방의 급소를 공격함으로써 반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이른바 초전박살의 욕심이 정치인들을 독설가로 만든 것 같다.
그러나 단 한방에 제압당할 상대가 어디 있겠는가.뉴턴의 운동의 법칙을 빌려올 것도 없이 작용은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반작용을 불러오게 마련이다.아니,상대방도 이 쪽을 제압하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극한적 용어들로 반격함으로써 작용보다 큰 반작용을 가져올 수밖에 없게 된다.항생제를 계속 쓰다 보면 그때마다 단위를 높여야만 약효가 있다고 한다.그래서 말의 폭력성도 어지간한 것엔 면역이 돼 이제는 그 강도를 가능한 한 최대로 높여야만 누군가 거들떠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남의 말 하기 쉬워 정치인들을 예로 들었을 뿐이지 따지고 보면 언어의 폭력에 물들어 있기는 나 자신을 포함해 신문과 방송 기자들이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자신이 알고 있는 용어 중 가장 자극적인 것들을 동원해 상대방의 급소를 가격하고 있다.솔직히 신문을 만드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신문을 보고 있노라면 그 전투적 용어들에 으스스함을 느낄 정도다.
이처럼 명색이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편을 갈라 서로 저주를 퍼부어대는 사회가 잘되기를 기대하는 건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다.또 이런 풍토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본들 그것으로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우선 지금의 각박하고 살벌한 풍토에서 벗어나야 한다.또 그러려면 평상심을 찾아야 한다.기자 개인의 경험에 비춰봐도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저주하면서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일이다.지도층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할 말은 하더라도 증오와 저주가 담긴 표현을 조금만 순화해도 우리 사회는 한결 윤택해지고,삶의 질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성경은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해질 것”이라고 했고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