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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언어, 사회 현상
[이진원 기자의 바른말광] 알고 나면 싱겁지만

소설가 이순원이 이런 글을 썼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저 상수리나무와 도토리나무들은 가을에 산 위에서 들을 바라보고 섰다가 들판에 풍년이 들면 조금 열매를 맺고 흉년이 들면 그해 식량이 귀한 산식구 들식구들을 생각해 많이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물론 학술적으로 보고된 내용은 아니다. 몇 년 전 강원도 정선에서 어느 나이 많은 노인에게 들은 얘기다. 정말 기막히지 않은가,나무의 세상사랑이. 또 그걸 지켜본 노인의 얘기가.'

정말로 그렇다면 나무의 세상 사랑에 감동할 만하다. 하지만 이치를 알고 나면 신기하거나 기막힐 일은 없다. 그 이치는 이렇다. 도토리나무의 가루받이가 잘 되려면 날씨가 좋아야 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날씨가 좋으면 벼농사에 필요한 물이 부족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도토리 풍년인 해에 벼농사는 흉년 들고,도토리 흉년이면 벼농사는 풍년이 드는 것. 그러니 도토리나무들이 산 위에서 들판을 보고 섰다가 가을에 열매 양을 조절한다는 건 '착한 상상력'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도루묵'에는 이런 이야기가 뒤따른다.

임진왜란 때 몽진(임금의 피란)을 간 선조 임금이 한 어부가 바친 '묵'이라는 물고기를 맛있게 먹고는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지금 은어는 예전엔 은구어(銀口魚)라 했다.) 그런데 임란 뒤에 그 생선을 다시 먹어 본 임금이 예전보다 맛이 못하자 "도로 묵이라고 해라"고 해서 '도루묵'이 됐다는 이야기다. '민간어원'의 맞춤한 보기로도 종종 인용되는 이 이야기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다.

한데 속사정을 살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부분이 있다. 도루묵은 냉수성 어종이라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주로 잡힌다. 하지만 선조는 개경,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피란을 갔을 뿐 이쪽으로는 간 적이 없었던 것. 그래서 도루묵에 얽힌 민간어원은 말 그대로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런 사정은 사실 알아도 그만,몰라도 그만이다. 민간어원의 성격 자체가 '믿어도 그만,안 믿어도 그만'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날카로운 우리말 모서리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그런 기능도 있는 것 같다.

아 참! '도루묵'은 '도로묵'으로 쓰면 틀린다.

2007/01/23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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