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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언어, 사회 현상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국어선생이 되어….’

국어만큼 신세 처량한 과목이 또 있을까. 말로만 ‘국 영 수’지, 국어 시간에 수학이나 영어 공부하는 놈은 많아도 참고서 한 권 주겠다고 선언해도 영어 수학시간에 국어 공부하다 걸린 놈은 아직 없다.

어찌 된 경우인지 ‘would have+p.p’(가정법 과거완료)라는 끔찍한 영문법은 찍소리 없이 외우는 놈들이 ‘객체존대, 상대존대’ 운운하면 “어, 그거 수능에도 안나오는 건데”라며 볼멘소리다. 어떻게 된 놈의 세상이 맞춤법 틀리면 “그럴 수도 있죠, 뭐” 하지만 영어철자 틀리면 “Oh, 창피!” 한다.

사실 국어란 과목은 열심히 배운다 해서 시험 잘 보고, 땡땡땡 논다해 서 백지 내는 것도 아니다. 안 배워도 말 잘하고, 놀아도 글 잘 쓴다. 오히려 수업시간에 소설책, 만화책 보는 놈들이 백일장에선 ‘터억하니’ 상만 잘 탄다. 어쨌든 10년 넘게 국어를 가르쳐봤지만 그 오묘한 이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애들 역시 배우고도 몰라하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학창시절 난 국어가 꽤 재미있었다. 지금은 그냥 그렇지만, 그때는 ‘낭만’이란 게 있었던 것 같다. ‘세번째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한 피천득의 ‘인연’, 날 꼼짝없이 노총각으로 만든 알퐁스 도데의 ‘별’, 그리고 구구절절 고개를 끄덕이게 했던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그 주옥 같은 글들이 다 사라지고 지금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들만 교과서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으니 애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아이들도 교과서 표지의 ‘국어’라는 글자를 획 몇 개, 글자 몇 개로 확 바꿔버린다.

‘국진이 어머니’ ‘꾹 참어’ ‘꿀엿’ ‘품어’ ‘꿇어’ ‘똥묵어 ’ ‘국 쳐먹어’ ‘장국영’ ‘굶어’ ‘북어’ ‘한(恨)국어’ ‘대한민국 얼씨구’….

그러나 아무리 ‘국어’가 ‘똥묵어’가 되더라도 어쩌겠는가. 우리 아이들의 화풀이(?)를 위해서라도 없어서는 안될 과목이니. ‘국진이 어머니’가 뭐라 하든 오늘처럼 가르치기 싫은 날은 그저 빈대떡이나, 아니지 옛날로 돌아가 그 시절 그때의 글이나 되살려 볼밖에.

“너희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있으면 한 번 써봐!”

-가출했는데 부모가 찾지도 않을 때.
-깡패한테 잡혔다. 돈 없다 그랬다. 그런데 바지 속에서 나오는 1만원 짜리 지폐.
-된장국을 먹다가 고기 덩어리인 줄 알고 씹었는데 된장 덩어리일 때. -코를 후비는데 후빌수록 더 들어가는 매끈매끈한 코딱지.
-종 치자마자 매점으로 달려가 줄 서서 기다리는데 바로 내 앞에서 외 쳐대는 소리, “빵 떨어졌다!”
-자고나면뻗치는 내 머리카락.
-졸려 죽겠는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쓰라고 하시는 선생님 의 말씀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2001/08/09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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