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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언어, 사회 현상
오역(誤譯)의 역사

아무리 영어가 출중하다 해도 조지훈의 시 ‘승무’를 영역하기란 어렵다는 어느 영문학자의 말을 듣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어는 참으로 어렵다. 이 땅에 태어났으니까 영문도 모르고 배웠지, 만약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웠어야 할 입장을 생각한다면 아찔하다.

그 많은 어미 변화를 어떻게 문법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미 변화 는 그렇다 하더라도 저 천변만화하는 형용사는 또 어쩔 것인가? 우리나라 속담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이 의미하듯이 우리 언어의 형용사 변화는 느낌으로 아는 것이지 문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문헌에는 오역(誤譯)이 많다. 오역은 그 번역자 의 외국어 실력이 낮을 경우와 번역자의 성실성이 부족할 경우에 일어난다. 그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용서받을 수 없지만 후자가 더 비난받을 짓이다.

그런데 이 오역을 자청해서 두 배로 부풀리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것 이 바로 중역(重譯)의 문제이다. 언제가는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일본어로 옮겼다가 영어를 거쳐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강심장의 사나이가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병자호란 때 절의(節義)를 지킨 김상헌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로 둔갑한 적이 있었다.

긍정문(충신)이 부정문(역적)으로 오역되어 일어난 불상사였다. 외국어를 번역하면서 어찌 오류가 없을까마는 이것이 중역의 경지에 들어서면 그 오류는 배가되고 원래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역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여기에는 하나도 보태고 뺄 것이 없으며, 그런 자는 재앙을 받을 것’(요한계시록 22: 18-19)이라고 말한 성서에도 오역은 있다.

예컨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마태오복음 19: 23-24)는 구절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밧줄로 바늘귀를 끼는 것보다 어렵다’의 오역이다. 히브리성경 원전에서 낙타와 밧줄의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에 생긴 오역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후자가 상징적이고 순리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요한복음 1: 1)도 ‘태초에 하나님께서 뜻하신 섭리(Logos)가 있었느니라’로 번역하는 것이 옳았다.

우리나라에 콜레라가 창궐한 것은 조선조 고종년간이었다. 이 병이 들 어오자 당시 습속대로 중국의 이름과 꼭 같이 ‘虎列剌’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이 글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호열자가 아니라 호열랄이다.

그런데 剌(이그러질 랄)이 刺(칼로 찌를 자)와 한 획이 다른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 병명이 보편화되자 ‘랄’과 ‘자’를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호열랄을 호열자로 오독(誤讀)하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누가 아는 체하며 ‘호열랄’이라고 했다가는 그 사람만 웃 음거리가 될 것이다. ‘호열랄’이 콜레라에 가깝지 호열자는 엉뚱한 발음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실록에는 분명히 ‘랄(剌)’로 기록되어 있다.(고종실록 을미 6월 16일자)

천고마비(天高馬肥)라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좋은 계절이니 책이 라도 한 자 읽으라는 뜻으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오역이 또 가당치도 않다. 이 말은 본시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때가 되었으니 반드시 오랑캐들도 지금쯤은 우리를 쳐들어 올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즉 국방에 더욱 마음을 쓰자(匈奴到秋高馬肥 變必起矣 宜豫爲備)’는 뜻이었다. 오랑캐들의 침입이 말이 살찌는 가을에 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이없이 책 좀 읽자고 뒤바뀌었는데 중국의 식자들 앞에서 아 는 체하느라고 우리 식으로 천고마비의 계절 운운 하니 저들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옷깃을 뿌리치고 돌아선다’고 할 때 ‘袂別’이라고 쓰고 몌별이라 고 읽는다. 그런데 그 몌자가 쓰기도 어렵고 발음도 고약해 이제는 모두들 결별이라고 읽고 아예 글자까지 ‘訣別’이라고 고쳐 쓰고 있다.

요즈음 한국인의 왕래가 빈번한 중국의 경제특구인 ‘xinshu’도 ‘심천’이 아니라 ‘심수’가 맞다. 그런데 그곳에 가는 한국인들이 모두 ‘심천’이라고 오독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도 이제 한국인들과 얘기할 깨는 아예 ‘심천’이라고 발음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영어가 보편화된 시대에도 영어의 오역도 흔히 있다. 1957년 10월에 소련은 역사상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마침 그해에 소련의 대권을 잡아 수상이 된 흐르시초프는 기고만장했다.

그는 ‘스푸트니크가 지구의 중력권을 벗어났으므로 이제 지구가 전보 다 더 가벼워졌다’고 익살을 부렸다. 이 말이 외신(外信)을 타고 영문으로 “Now, the earth became lighter than before”라고 텔렉스로 들어왔다. 그때 국내의 ○○통신의 외신부장은 위의 문장을 ‘별(인공위성)이 떴으므로 이제 지구는 전보다 더 밝아졌다’고 번역하여 각 신문사에 송고했다. 하지만 ‘light’는 빛이 아니라 가벼움이란 뜻이었다.

일전에 세계 펜(PEN) 클럽 대회가 서울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천하의 시객(詩客)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술이 들어가자 비위 좋은 한 한국 시인이 한국어로 즉석 시를 낭송했다. 그런데 이 자리가 국제적인 모임인 만큼 누군가 이 시를 영어로 동시 통역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 한국의 시인 중에서 영어라면 한 가닥 하는 분이 앞에 나섰다.

보통 연설이나 회화가 아니라 시를 동시 통역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싯귀 중에는 ‘꽃잎이 하늘하늘 나르고…’라는 대목이 들어 있었다. 그는 우선 ‘하늘하늘’에서 막혔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지 않고 ‘Blossoms fly from sky to sky’라고 번역해 알 만한 사람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나는 이 장면이야말로 한국 오역사에서 가장 애교에 넘치는 오역이라고 생각한다. 국사학에서 씻을 수 없는 오역은 ‘高麗’,‘高句麗’를 고려와 고구려로 오독한 것이다. 이는 ‘고리’와 ‘고구리’로 읽어야 옳다.

조선 시대까지도 ‘麗’를 ‘리’로 읽다가 일제 시대에 들어와 ‘려’로 읽기 시작한 것을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려’로 읽고 있다.

나의 이러한 주장이 미심쩍은 독자들께서는 큰 옥편에서 ‘麗’ 자를 찾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다시 번역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번역을 하면서 진실로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오 역의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중 번역(重譯)의 부도덕성과 비성실성에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편견 없이 원전에 충실한 번역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따라서 번역도 창작과 같은 정도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지적(知的) 풍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신복룡(건국대 교수·정치외교사)

2001/08/17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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