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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언어, 사회 현상
난 ‘외계인 국어사전’이 필요해

“절라 우껴주게씀다” 최근 흥행대박을 터트린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홍보문구 가운데 하나라는 것쯤은 웬만한 젊은이라면 다 안다.극장앞에서 친구나 연인끼리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걍,당스,강추^.^”(그냥 당연한 스토리지만 강력추천함) “추카추카,보고시퍼여!”((관람을)축하하며,(나도)보고싶어요)

네티즌 사이에 주고받는 이 정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세상살이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졌다고 하겠다.“방가”(반가워요) “글구”(그리고) “띰띰해”(찜찜해) “먀내”(미안해) “꾸벅”(인사하는 모습) “0124”(영원히 사랑해)….준말과 구개음화,자음접변과 의태(성)어 등을 ‘깜찍하게’ 깨트리고 응용한 은어들.

요즘 유행하는 이런 말들이 표준어를 몰아내는 날에는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피터 빅셀의 수필집 ‘책상은 책상이다’(1993·문장)를 떠올려본다.책상을 걸상이라고 바꿔부르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책상을 왜 꼭 책상이라고만 불러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언어는 인간의 사회적인 약속인데도 말이다.

그는 모든 단어를 다르게 바꿔부르면서 혼동하지 않기위해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었다.“책상을 갖다줘”의 경우 “걸상을 데려가”하는 식이다.언어의 독재에 탐닉하는 것은 권력을 휘두르는 것처럼 신나는 일.하지만 새로운 단어로 채워진 ‘나홀로 사전’이 완성됐을 때 쾌재를 불러야할 그는 예상치 못한 고민에 빠져들고 말았다.

단어를 전부 바꾼 다음 옛 단어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렸기 때문에 “책상을 갖다줘”라는 사람들의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선 자신만의 사전을 찾아야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그의 사전에 ‘책상’은 ‘걸상’으로,‘걸상’은 ‘연필’ 등으로 정의돼 있으니 여러 단어를 상호비교한 다음에야 비로소 “책상을 갖다줘”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네티즌의 대화에 익숙하기 위해서 우리는 외계인들이나 사용할법한 ‘특수용어사전’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말이란 사회에 따라 변하고 사람은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야하는 존재이므로.그런데 기껏 사전을 달달 외웠더니 다시 새로운 은어가 나타난다면 이 일을 또 어찌할 것인가.어차피 결론은 ‘책상은 책상이다’인데.

과문한 탓인지 요령부득인 것은 또 있다.‘애니 기븐 선데이’ ‘아트 오브 워’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엑시트 운즈’ ‘썸원 라이크 유’ ‘다운 투 어쓰’….최근 극장에 내걸린 외화들의 제목이다.미국의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영어를 모르면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에 적응하느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도 군소리를 늘어놓지 않는다.

한때는 ‘사랑과 영혼’이니 ‘원초적 본능’이니 우리말로 번역하는 배려가 있었는데 모두가 옛날 얘기다.어릴적부터 닦은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원제목의 뜻을 단번에 알아내는 젊은 관객들에게 어쭙잖은 우리말 제목은 사족에 불과하다던가.‘썸원’의 올바른 외래어 철자법이 ‘섬원’이라는 식의 촌스런 지적은 아예 그만두시란다.

10월9일 555돌 한글날,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 한가지를 청한다.남의 말과 글을 빌려쓰는 까닭에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해 말하고 읽고 쓰기 쉽게 만드신 한글이 시대감각에 뒤떨어지니 세계화된 개정판이라도 내려주십사고.‘긍휼’을 훈민정음의 반포이념으로 삼으신 대왕은 여의도 공원에서 근엄한 자세로 웃고만 계신다.

2001/10/08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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