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를 오용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는 적합하지 않은 단어의 사용이다. 그것도 대략 비슷한 의미가 아니라 반대의 의미를 사용하는 데에 더욱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은 글을 쓰는 이가 어느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모르는 채 이를 사용하는 데서 발생한다. 더구나 이런 사례가 교육을 받은 사람이 종사하는 언론 매체에서 나온다는 게 문제가 된다.
이런 단어 가운데 하나가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이 단어는 나에게는 참고해야할 교훈 거리가 되나 좋은 사례는 아니라는 의미로만 쓸 수가 있다. 그런데도 이를 오히려 본보기로 삼아야할 좋은 사례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이렇게 되면 글을 쓰는 이는 정반대의 의미로 타산지석을 사용한 셈이다. 언론인은 유무형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맥락에서 이 같은 실수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보다 좀 심각하다. 16일자 유력한 조간 신문의 사설부터 이런 사례가 나온다. 이와 함께 포털에 올라 있는 기사를 봐도 용법에 맞지 않는 사례가 많이 있다. 이는 상당수 기자가 타산지석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거나 다른 의미로 알고서 기사를 쓴다는 방증(傍證)으로도 볼 수가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타산지석>>의 정확한 의미가 나온다.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자신의 산의 옥돌을 가는 데에 쓸 수 있다는 뜻. 본이 되지 않는 남의 말이나 행동도 자신의 지식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가 나와 있다. 핵심은 <<본이 되지 않는 남의 말이나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결코 '본받아야할 사례'로 써서는 안 된다.
#사례 1 = -중략- 중국은 북한과의 전통적 유대를 강화하는 추세다. 남북관계는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중국과 대만이 실사구시적 접근으로 급속한 해빙을 이루고 있는 데 비해 정작 실용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외교는 험난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양안 관계를 <<타산지석>>으로 삼기 바란다. (2008 06/16 NAVER 발췌)
#사례 2 = -중략- 도청 및 유관기관은 2013년 말까지 이전할 예정이다. 하지만 후보 탈락지역에서는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2조5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이전 사업비 확보도 문제다. 현 청사 및 부지 활용 방안도 고민이다. 지난 2005년 11월 이전을 마무리한 전남도청을 찾아 경북도청 이전 사업에 대한 <<타산지석>>을 찾아봤다. (2008 06/14 NAVER 발췌)
두 사례에서 타산지석의 용법이 틀렸다. 처음 기사에서는 양안 관계가 바람직하게 진전하고 있어 우리로서는 배워야할 좋은 점이다. 다음에 나오는 기사도 경북도청 이전과 관련해 전남도청 이전에서 배워야할 좋은 사항을 다루었다. 두 사례에서 나온 타산지석은 적합하지 않은 말이다. 타산지석은 교훈을 얻어야 하지만 본을 받아야할 좋은 사례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례 3 = 이명박 대통령의 '닮은꼴'을 강조하며 집권한 대만의 마잉주(사진)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중략- 최근 한국에서 이 대통령 지지가 급락하자 '이명박 지우기'를 서두르고 있다. 마잉주 총통 세력으로 분류되는 우위성 입법위원은 "마 총통과 이 대통령은 같지 않은 점이 많다"며 "마 총통에게는 단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거울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고 뉴스포털 <중광신보망>이 최근 전했다. (2008 06/11 NAVER 발췌)
이 사례는 타산지석의 용법이 맞다. 마 총통은 이 대통령의 사례가 처음에는 부러웠지만 이 대통령이 지도력 위기를 맞은 현재에는 참고는 해야하지만 따라가야할 사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틀린 사례가 상당히 많은 가운데서도 나온 바른 사례라 고무적이었다. 물론 바른 사례는 이것만은 아니었다.
틀린 사례에 나오는 타산지석은 '귀감(龜鑑)' '모범 사례' '본보기' '본받아야할 사례' 등으로 바꾸면 된다. 타산지석은 좋은 사례에 쓰는 단어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글을 쓰는 이가 타산지석의 바른 의미를 몰라 남의 좋은 사례를 '귀감'이나 '본보기'로 치하(致賀)하지 않고 '타산지석'으로 폄하(貶下)해서는 안 된다. 이런 오용도 말로만 하는 국어 사랑의 현주소라면 지나친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