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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교육, 학술
<어문산책> 즐거운/행복한 비명(悲鳴)과 환호성(歡呼聲)

허형석 편집위원 = 답습(踏習)은 무섭다. 우리는 여러 면에서 앞 사람이 확립해 놓은 선례를 어지간하면 그냥 따른다. 물론 선례가 아무 문제가 없을 경우 다행이지만 문제가 있는데도 이를 그대로 따를 경우는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앞선 사람이 쓰던 표현을 문제가 있는데도 아무 생각이 없이 반복하면 언어 생활에 혼란을 초래한다.

이렇게 답습하는 표현 중의 하나가 '즐거운/행복한 비명(悲鳴)'이다. 이런 표현은 성립할 수가 없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이 말은 <<①슬피 욺. 또는 그 울음소리 ②일이 매우 위급하거나 몹시 두려움을 느낄 때 지르는 외마디 소리>>로 풀이가 나와 있다. 비명의 핵심은 <<일이 매우 위급하거나 몹시 두려움을 느낄 때 지르는 소리>>다. 여기에 어떻게 '행복한/즐거운'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수 있겠는가? 비명은 행복하거나 즐거울 때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물론 이것이 시적이고도 역설적인 표현으로는 가능하다. '행복한 비명'은 그 자체로는 모순이지만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지만 모순을 안고 있는 표현을 정상적인 상황에서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다. 글을 쓰는 이가 이 같은 답습을 깨지 않으면 언어 생활의 왜곡에 일조하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사례 1 = -중략- 촛불은 언론에 힘이 되기도 하고 속 쓰린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어떤 언론은 격려 광고와 구독자 증가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어떤 언론의 회사 정문 앞에는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의 쓰레기 더미가 쌓이더니 폐간을 촉구하는 종이스티커가 부착되고 있다. (2008 06/18 NAVER 발췌)

#사례 2 = -중략- 담뱃값 인상이 이처럼 대폭 이뤄지면 가장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곳은 물론 정부다. 당장에 세수가 대폭 늘어난 넉넉해진 주머니를 어디다 써야할 지 행복한 고민에 들게 되는 것. 그러다보니 이를 노리는 곳도 만만치 않게 된다. (2008 06/17 NAVER 발췌)

#사례 3 = 지난 14일에 실시한 제289회 로또 추첨에서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91억8000만원이었던 1등 당첨금이 이번 주 2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로또 1등 당첨금 이월은 2004년 4월 10일 71회 로또 추첨 이후 4년 2개월여 만의 처음으로, 벌써부터 전국의 소문난 '로또 명당'은 로또 구입을 위해 찾아 드는 손님으로 정신 없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평소보다 판매율이 2배 이상 높아졌다는 것. (2008 06/17 NAVER 발췌)

#사례 4 = 투자라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주가가 저공비행을 할 때는 수익이 나질 않아 조바심나고, 주가가 고공비행을 할 때는 <<즐거운 비명>>과 함께 언제 떨어질까하는 불안감이 교차하죠. 단, 이러한 상태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나만의 주관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략- (2007 06/03 NAVER 발췌)

'즐거운 비명'은 기사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포털에 오른 다른 글을 봐도 이런 표현은 상당히 많이 나오는 편이다. 우리 국어가 이처럼 잘못 쓴 표현에 물이 상당히 든 상태다. 글을 쓰는 이들이 이런 표현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바둑의 정석처럼 써온 결과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오염 실태가 심각하다.

위 사례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는 <<즐거운 소리를 지르고/즐거워 소리를 지르고>> 또는 <<환호성을 지르고/환호성을 올리고>> 등으로 바꿔 쓰면 된다. 환호성은 <<기뻐서 크게 부르짖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네 사례를 보면 모두 그런 분위기를 환영하며 기분이 좋아서 소리를 지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환호성'이 상황에 적합한 단어다. 다만 이 말에는 '기뻐할 歡'이 들어가 있어 굳이 여기에 '행복한/즐거운' 등을 붙일 필요는 없다. 그러면 겹말 표현이 나온다.

글쓰기는 치밀한 작업이다. 치밀한 작업 중에는 논리에 맞지 않는데도 답습됐던 표현에 대한 검증도 포함된다. 이 같은 표현을 발굴해 다듬는 작업도 국어 사랑의 일환이 아닐 수 없다. '즐거운 비명'뿐만 아니라 다른 표현도 이상하면 다듬어야 한다. 훌륭한 국어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나오지 않는 법이다.

2008/06/25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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