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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른 이 154800423 명
깁고 더함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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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한 영혼`들의 아름다운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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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 / 이오덕·권정생 지음 / 한길사::)
지난 8월25일, 교육자, 아동문학가이자 깐깐한 국어학자이던 이오덕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들만이 희망이다. 교육만이 우리가 몸바쳐 할 일이다”며 평생을 어린이 교육에 몸바친 이였습 니다. 열아홉에 교직에 들어간 뒤 아이들의 글쓰기와 도덕 교육, 노동 교육을 고집하며 꼿꼿하게 살아온 그답게 유언도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고, 어떤 조문객도 받지 말것. 부고는 장례가 다 끝난 다음에 보낼 것. 또 한가지, 이오덕이 남긴 메모에는 이런 부탁도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무덤 가까운 곳에 권정생의 시비 하나를 세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오덕은 권정생과 어떤 관계였기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무덤 근처에 권정생의 시비를 세워달라고 부탁한 것일까요.
신간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는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 받은 참 아름답고도 슬픈 편지 모음집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이오덕이 권정생을 찾아갔던 1972년 가을. 당시 중견 아동문학가로 주목받던 이오덕이 어느 기독교 잡지에 실린 ‘강아지 똥’이라는 동화를 읽은 직후였습니다.
동화를 쓴 권정생은 경북 안동 근처 시골교회의 종지기, 한해 수입이 5000원에 지나지 않는 가난과 전신결핵의 고통 속에서 뼈를 깎아 글을 쓰는 35세의 무명작가였습니다. 당시 이오덕의 나이는 47세, 그러나 이오덕은 12살이나 젊은 권정생이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보배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이오덕은 권정생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권정생은 글을 쓰는대로 이오덕에게 보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몽실언니’, ‘한티재 하늘’, ‘슬픈나막신’ ‘우리들의 하느님 ’등 주옥같은 동화를 쓴 작가 권정생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30년간 계속된 두 사람의 편지가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였습니다.
나이를 뛰어넘은 존경과 우정과 사랑. 두 사람의 교유 수단은 편지였습니다. 두 사람에게 편지만큼 서로의 영혼을 나눌 수 있는, 깊고도 아름다운 대화 방식은 없었습니다.
이오덕은 지극한 사랑과 정성으로 병과 가난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권정생을 보살핍니다. 아픈 권정생은 원고지 한장을 채우기 위해 수십번도 더 일어났나 앉았다를 반복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으로 그 사랑에 보답합니다.
“선생님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지도 않고 지내온 것이 죄스럽습니다. 우편환으로 칠천원 부쳐드립니다. 우선 급한대로 양식과 연탄 같은 것 확보하십시오. 신문값 같은 것은 차차 내도록 합시다. 요즘 출판사정이 극히 악화된 것 같은데 그래도 어찌해서라도 책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이오덕)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 싫어, 나는 돈조차 싫었습니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권정생)
편지를 읽으며 우선 다가드는 것은 외로움과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쓰고, 재롱떠는 염소 때문에 집을 못 나가고, 교회 지붕의 박쥐와 벗하는 권정생의 삶입니다. “아동 문학에서 가장 배격해야 할 것은 설교나 훈시입니다.”, “아동 문학도 온 생애를 바쳐서 쓰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굶주림만 없다면 가난해져야 해요”라는 말에서는 권정생의 문학관과 삶의 태도가 날것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원고지 1장당 고료가 100원밖에 안되던 시절의 출판가와 문단의 숨은 이야기도, 아동문학가인 이현주목사와의 교유도 재미있는 읽을거리입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12살 연하의 권정생을 부모처럼 보살피면서도, 깎듯이 존경하며 세상에 알리려는 이오덕의 모습입니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동화와 소설, 시같은 문학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살아가는 모습 자체를 세상에 전하고 싶어합니다.
이오덕이 권정생더러 어느 월간지의 논픽션 작품모집에 응하라고 권하는 것도, 권정생의 맑은 삶 자체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편지를 묶어 편지 하나하나에 제목을 다 붙이고 출판사에 넘긴 것도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곤고하고 슬프지만 맑고 진실된 권정생의 작품과 삶을 통해 세상을 살만한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겠지요.
나이 마흔이 가깝도록, 서울에 한번 못 가본 권정생이 서울에 나들이하는 문제를 두고 서로 주고받은 편지는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권정생은 서울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가 몸이 안좋아서 안 가기로 했다며 이내 그말을 거두어 들입니다. 이오덕은 춥거나 덥지 않을 때 가보자고 다시 권하고…, 결국 서울에 가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부터 편지는 알리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 이외에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 오래전도 아닌 때, 두사람이 이런 편지를 주고 받으며 나눈 우정은 기적이라고 한 주중식(샛별초등학교)교장의 발문은 공감이 갑니다. 돈이면 뭐든 되는 이 척박한 시대, 이오덕과 권정생 사이에 있었던 일은 참으로 기적이었습니다.
이오덕이 세상을 떠나고 난 보름여가 지난 추석 즈음, KBS 1TV에 서 방영한 ‘아름다운 유산, 이오덕의 편지’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보며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습니다. 이오덕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식장을 찾은 한 제자는 “우리가 언제 이런 선생님을 모셔보나”하고 통곡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장례식이 이뤄지던 내내 권정생은 두문불출하며 이오덕을 보냈습니다. 그랬던 권정생은 책의 서문에 “두툼하게 싼 책보자기를 들고…, 산길 모퉁이를 걸어 사라지던” 이오덕을 추억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선생님 모습은 이제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게 되었고, 목소리도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만 환청으로 들을 수 밖에 없겠습니다. 아직 이승에 남아있는 우리들은 선생님이 남기신 골치아픈 책들을 알뜰히 살피며 눈물나는 세상 힘겹게 견디며 견디며 살 것입니다. 이담에 우리도 때가 되면 선생님이 걸어가신 그 산길 모퉁이로 돌아가서 거기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2003/11/13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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