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 한글 문맹은 없지만 한자 문맹은 수두룩하다. 자기 이름은 한자로 쓸 줄 알아도 주소 본적 등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써보라고 하면 못쓰는 학생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은 한자 얘기만 나오면 곤혹스러워한다. 1970년 한글전용 정책이 도입된 이후 우리의 한자 교육은 거의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 버렸다. 한자 공부가 원래부터 쉽지 않은 데다 학교에서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니 한자 문맹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한자는 몰라도 된다는 한자 경시 풍조가 확산되어 있다.
▷최근 한자 문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는 우리가 과연 한자를 이렇게 간단하게 폐기 처분해도 되는 것인지 득과 실을 한번 따져보자는 것이다. 한자문화권이란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을 말한다. 인구 면에서 20억명으로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한자는 이들 아시아 국가와의 의사소통, 나아가 교류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다. 아시아의 잠재력과 이들이 이웃 나라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가 한자를 모른다는 것은 우선 실리적인 차원에서 손실일 수밖에 없다.
▷모국어를 이해하고 보호하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한자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말은 중국과의 빈번한 교류로 인해 70% 이상이 한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자 문맹이 되어서는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흔히 한자 교육 문제가 제기되면 한글전용 정책을 포기하자는 것이냐는 반론이 제기되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한자 교육은 엄밀히 말해 한글과 한문을 같이 쓰는 국한문 혼용과는 별개의 문제다. 한자를 배워 아시아를 알기 위한, 또 모국어와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면 된다.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13명의 교육계 원로들이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부활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는 소식이다. 한자 문맹이 급증하는 시점에서시의적절한 문제 제기로 평가되고 있다. 한자문화권에서 유일하게 한자 문맹국으로 전락하기 이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자 교육을 강화해 나갈지 지혜를 모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과거에 있었던 한글전용 대(對)국한문 혼용 사이의 지루한 논쟁이 아니라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새로운 논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