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른 이 149057525 명
  깁고 더함 2007/12/28
   
 
 
 
  교육, 학술
‘을’과 ‘으로’

어떤 사람을 대중 앞에 세워 소개할 때 흔히 다음처럼 말한다. “선생님께서는 그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큰 업적을 이루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치 객관성을 지닌 표현 같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내용처럼 들린다. 그것은 ‘무엇으로 알고 있다’의 토씨 ‘으로’의 쓰임 때문이다.

우리말에서 ‘무엇을 알고 있다’와 ‘무엇으로 알고 있다’의 말뜻은 많이 다르다. 토씨 ‘을’과 ‘으로’의 차이로 생긴 의미 차이는 다음과 같다. ‘큰 업적을 이루신 것을 알고 있다’는 큰 업적을 이룬 것이 이미 ‘사실’이라는 것이 전제돼 있다. 그러나 ‘큰 업적을 이루신 것으로 알고 있다’는 큰 업적을 이룬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을 안고 있다. 이것은 부정하는 문장을 이어 보면 바로 이해된다. 앞 문장을 “큰 업적을 이루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와 같이 표현하면 의미적으로 매우 어색하다. 그러나 뒤 문장을 “큰 업적을 이루신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와 같이 표현하는 것은 얼마든지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대중 앞에 서서 ‘무엇으로 알고 있다’라는 표현으로 소개되는 사람은 어떤 느낌이 들까 마치 큰 업적도 없는데, 인사치레로 큰 업적이 있는 사람처럼 소개되는 것으로 느낄 것이다. 아무 업적도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큰 업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잖이 기분이 상할 터이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토씨 하나에 따라 말뜻이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우리말에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는 토씨에 대하여 그 정확한 의미와 기능을 생각하고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바른 언어생활 문제 이전에 바른 사회생활의 문제다.

권재일/서울대교수·언어학

2004/07/19 한겨레
   
 
번호 예제 날짜 출처
300 짐작 2004/11/21 한겨레
299 ‘ㄴ가·은가·는가’를? 2004/11/02 한겨레
298 폐지든 강제든 표기통일 필요 2004/10/26 경향신문
297 조선어학회 사건 2004/10/25 한겨레
296 영어 안 섞으면 말못하는 지식인 2004/10/12 경향신문
295 한글의 세계화 2004/10/04 세계일보
294 [이진원기자의 바른말 광] TV의 두 얼굴 2004/09/21 부산일보
293 -게/-ㄹ게 2004/09/21 한겨레
292 `전문용어 표준화` 전담기구 만들자 2004/09/20 한국일보
291 네티즌은 누리꾼 2004/09/14 한겨레

   
   
 

 


이 누리집은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를 판매한 자금으로 부산대학교 정보컴퓨터공학부
인공지능연구실에서 깁고 더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배움터(051-516-9268)에 고칠 곳이 있거나 건의할 것이 있으신 분은 연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