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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교육, 학술
말뚝과 근지

원로작가 박완서씨가 최근 고백하기를(‘내일을 여는 작가’ 여름호:민족문학작가회의), <엄마의 말뚝>(1980)에서 ‘근지 있는 집안’이라고 할 때의 ‘근지’란 말을 썼는데, 활자로 박아 나온 책을 보니 ‘근거’로 바뀌었더란다. 같은 글에서, <엄마의 말뚝> 프랑스어판이 나왔는데, 말뚝을 ‘피켓’으로 번역해, 그것도 영 맞갖잖다고 덧붙였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어서 넘어갔다는 얘기인데, 편집자나 작가나 두루 태평이어서 최근에 나온 ‘전집’에도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다시 읽었더니, ‘근거’가 일곱군데 보였다.

“시골에 둔 근거라는 건/ 박적골의 근거를 가장 으뜸가는 품성으로 숭배하고/ 어머니가 정작 잃은 건 근거가 아닐까/ 남아 있는 근거는/ 끊임없이 근거를 심어줌으로써/ 근거의 고향/ 점잖은 근거와 속된 허영과의 모순 ….” 여기서, ‘근거’는 말뚝을 ‘피켓’으로 번역한 것보다 더 우스운 개악이다. 번역은 완전히 다른 말로 뒤치는 것이어서 ‘한계’를 감수할 법하다. 하지만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라고 ‘근지’를 ‘근거’로 고치는 편집자의 태도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모르면 그대로 둬야 한다. 그나마 늦게라도 고백하는 작가의 태도는 작품과 독자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이 말(근지·根地)은 오래 전부터 쓰이던 말로서, 홍명희의 <임꺽정>에도 몇군데 보이고, 큰사전들을 찾아보면 엄연히 올림말로 오른 말이기도 하다. 뜻은 작가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근본, 바탕, 뼈대’와 같다.

그리고 작품에서 ‘말뚝’과 ‘근지’는 큰 은유로 대비된다. 말하자면 엄마는 ‘근지’를 강조한 반면, 작가는 그것을 ‘말뚝’으로 뒤친 것이다. 그 ‘근지’가 ‘근거’가 되어서는 이런 비유조차 먹히지 않는다.

최인호/교열부장

2004/07/22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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