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책서 살려낸 우리말 널리 쓰며 살찌워야 1990년대 첫무렵에 ‘시나브로’라는 말이 죽었던 말에서 산 말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낱말책에만 묻혀 있던 낱말 ‘시나브로’였습니다. 말뜻과 말느낌이 좋다며 그 뒤로 여러 곳에서 공식으로 이 낱말을 썼고 지금은 그럭저럭 널리 알려졌어요.
하지만 ‘시나브로’라는 말을 되살리기만 했지, 쓰임새를 넓히지 못했습니다. 그저 뜻과 느낌이 좋은 토박이말로만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 낱말을 쓸 만한 자리를 못찾는다고 할까요.
그러던 어느 날 <마츠이 다다시 지음-어린이 그림책의 세계>(한림출판사) 라는 책을 읽다가 “어떤 뜻을 갖는 것일까 하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란 대목을 만났습니다. 이 대목에서 ‘무의식중’이란 말이 좀 어렵고 알맞지 않다고 느겼어요. 알맞은 다른 말로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낱말책에서 ‘무의식중’이란 말을 찾아보았습니다.
‘무의식(無意識)’은 “자신의 언동이나 상태 따위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일체의 작용”으로, ‘무의식중(無意識中)’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로, ‘은연중(隱然中)’은 “남이 모르는 가운데”로 풀이하더군요. 이렇게 세 가지 말뜻을 살피다가 퍼뜩 떠오른 말이 ‘시나브로’였습니다. ‘무의식-무의식중-은연중’이란 말뜻이 ‘시나브로’와 거의 같지 않느냐 생각했습니다.
저는 ‘시나브로’라는 낱말을 두 가지 뜻으로 풀이합니다. 하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또는 천천히”이고 둘은 “남이 모르거나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이란 말뜻은 ‘무의식-무의식중’을 담아낼 수 있고 “남이 모르거나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란 말뜻은 ‘은연중’을 담을 수 있어요. 그래서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에 나온 말은 “어떤 뜻을 가질까 하고 시나브로 생각했습니다”로 다듬을 수 있어요.
어떤 낱말을 ‘죽은말’ 아닌 ‘산말’로 숨을 불어넣었다면 그저 고운 말이 아니라 우리가 널리 쓸 말로 되살리면 더 좋습니다. 그러면 시나브로 우리말 살림도 넉넉할 수 있고 우리 마음도 더 따뜻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