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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교육, 학술
이력

‘이골이 나다’란 말이 있다. “어떤 일을 진절머리가 나도록 오랫동안 계속 해서 완전히 길이 들어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지다”라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이력이 나다’란 말도 있다.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해 보아서 얻어진 슬기가 몸에 배어 막힘이 없을 만큼 익숙해지다”라는 뜻이다. “이력이 붙다, 이력이 잡히다, 이력이 트다, 이력을 지니다”라고도 하는데, ‘이력이 나다’와 같은 말이다.

그런데, ‘이골’(익숙)은 아무 문제가 없으나 ‘이력’(슬기)은 문제가 있다. 우리 사전에 ‘이력’이라는 우리말이 〈우리말큰사전〉에만 있고, 다른 사전들에는 우리 사전들 버릇대로 뜻도 다른 ‘이력’(履歷)이라는 한자말에 묻혀 있는 것이다.

본디 ‘이력’(履歷)은 “①그 사람이 지금까지 거쳐 온 학업, 직업, 경험 들의 내력. ②(불교) 정해진 과정 따라 경전을 공부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이력을 들추다, 이력을 쌓다, 이력이 화려하다”들처럼 쓰인다.

북쪽 풀이는 유별나다. “개별적인 사람이 나고 살아 온 정치적 환경과 사회 경제적 처지와 학력, 직업, 조직 생활을 비롯한 사회 정치 생활의 주요한 경력”이란 뜻이란다.

어쨌거나 한자말 ‘이력’(履歷)은 우리말 ‘이력’과는 영판 다르다.

“이력이 터서 막힘이 없다”고 할 때, 그 속의 ‘이력’을 ‘이력’(履歷)으로 바꾸어 놓아 보라. 말이 되는가.

우리말 ‘이력’은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해 보아서 얻어진 슬기”라는 뜻이다.

우리말 ‘이력’을 한자말 ‘이력’(履歷)과 달리 〈우리말큰사전〉에 살려서 바로잡아 놓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다시 되돌려 버렸으니 아깝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2004/09/19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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