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1∼8호선에는 순우리말 땅이름이나 역사적 유래가 담긴 이름을 붙인 역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3호선 학여울역.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이곳은 예로부터 멀리서 보면 지형이 학처럼 생긴데다 물살이 빨라 ‘학여울’이라고 불렸고 대동여지도에 학탄(鶴灘)으로 기재돼 있다는 토박이의 증언으로 옛 이름을 되찾았다.
5호선 애오개역은 아현의 본래 이름으로 큰고개인 만리재 옆의 작은 고개 혹은 도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성 밖에 묻어야만 하는 법에 따라 상여를 메고 고개를 넘으며 곡을 했다 해서 불렸던 애오개란 이름을 되살렸다. 또 당말이란 마을과 벽동이란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가 굽어 있다 해서 굽은다리역, 임경업 장군이 병자호란 때 산기슭에서 작은 농(籠)을 발견해 열었더니 칼이 나왔다는 전설이 얽힌 개롱역 등이 있다.
6호선에는 석관동 동쪽 천장산의 모양이 검은 수수팥떡을 꼬치에 꿴 모습이라 해 붙은 돌곶이역, 경기도와 삼남지방의 세수미를 쌓아두고 관리들의 녹봉을 지급했던 창고에서 딴 광흥창역, 새절이 있었다 해서 붙은 지명인 새절역, 항아리 모양의 바위가 있어 붙은 독바위역 등이 있다.
7호선에는 역참기지가 있어 말들을 들에 놓아 기른데서 유래됐다는 설과 넓은 들이란 뜻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는 상계동의 마들역, 먹을 제조하는 곳이 많아 붙은 먹골역,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다닐 때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 쉬기 적적해 장승을 세웠다는 장승배기역 등이 있다.
하지만 총 262개 지하철역 중에는 아직도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잘못 붙이거나 왜곡한 행정명칭을 그대로 딴 이름들이 많다.
시루를 엎어 놓은 모양의 시루뫼가 인근에 있는 증산(甑山)역,꽃이 활짝 피는 모양인 개화산 곁에 있는 마을이란 뜻의 방화(傍花)역 등은 한자로 표시하지 않을 경우 본래의 의미를 알기 힘들 정도다.
마포역은 본래 삼개라는 넓은 들이 있어 삼개나루라 불리던 것을 한자로 뜻을 옮긴 것이고, 노량진역은 본래 이름인 노들나루(넓은 들이 있는 나루)를 한자로 따서 노량진(露梁津)이라 붙여져 본래의 뜻과 말이 사라졌다. 영등포는 한강의 폭이 넓어지면서 갯벌이 넓다고 해서 붙은 땅이름인 ‘버등개(뻗은 갯벌)’가 본래 이름이지만 이를 한자로 뜻만 살려 지은 이름이다.
서울시지명위 김영상 고문은 “역사와 뿌리를 외면한 지명은 생명력이 없는 죽은 이름”이라며 “일제에 빼앗긴 우리 지명을 되찾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